전공의 공백 채우기용 인력 정책 발표에 의료계 "실효성 없다"
현장 요구사항 즉각 반영 분위기 "도움 안 된다" 비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부는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비상진료체계'라는 이름으로 법을 넘나드는 각종 인력 충원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의료계는 달갑지 않은 모습이다.
2월 20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후 보건복지부는 제한적으로 운영하던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종별 구분 없이 전면 확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진료지원인력(PA) 시범사업을 돌연 추진했다. 간호사와 의사의 업무 중 회색 지대에 있는 의료행위의 권한을 간호사에게도 부여하는 것으로 '무면허 의료'라는 위법적인 부분을 정부가 적극 보호하고 있다.
이후에도 비대면진료 범위를 무한 확대하고 진료실 벽을 허무는 등 각종 의사 인력 공백 메우기 정책을 내놨다.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현장의 요구사항을 즉각 반영하는 모습인데,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일련의 비상진료체계 정책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진료공백을 없애기 위해 인력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의협신문]은 정부가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내놓은 방책을 확인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활동하지 않는 은퇴 의사 4000여명 활용"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분야 진료공백 최소화를 위한다며 은퇴한 '시니어' 의사를 활용책을 발표했다. 전공의 공백이 한 달을 넘어가며 현장을 지키고 있는 교수진의 피로도가 상승, 당직 부담을 완화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50세 이상 79세 이하 의사 중 활동하지 않는 의사는 약 4166명이었다. 구체적으로 50대는 1368명, 60대 1394명, 70대 1404명 수준이었다. 최근 5년 동안 전국 의대 퇴직 교수는 연평균 230명, 누적 1269명이었다.
의료기관에서 시니어 의사를 신규 채용하고 퇴직 예정 이ㅡ사는 채용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 나간다는 게 정부 방침. 이를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에 시니어의사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이달부터 운영을 개시했다. 시니어의사지원센터는 진료를 희망하는 의사를 모집해 인력 풀을 구축하고 교육을 실시, 병원과 시니어 의사를 연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 시니어 의사 활용책은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워넣기 위한 제도가 아니었다. 필수 지역의료 기피 현상 해결책으로 대한의사협회가 먼저 정부에 제시한 방안인데, 일할 수 있는 시니어 의사를 필수 지역의료 영역에 배치기 위함이 첫번째 목적이었다. 이를 당장 전공의 공백으로 인한 현실을 메우기 위한 방책으로 활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일선 현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시니어 교수 활용 정책에 "화가 났다"라며 "교수진 중에서도 60대 이상은 연령 때문에 당직에서 제외하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당장 전공의 업무가 공백인데 시니어 의사가 현장에 투입된다고 해도 전공의 업무를 하는게 아니다"라며 "40~50대의 비교적 젊은 교수들이 결국 당직을 서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개원의도 수련병원에서 진료 가능"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0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의료기관을 벗어나 의료업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의료법 조항 예회를 '한시적'으로 허용한다는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개원의가 인력난을 겪고 있는 대형병원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교수도 진료실 밖에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허용했다.
현행 의료법에 33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 의료업을 할 수 없으며 꼭 의료기관 안에서 의료업을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조항에 있는 예외 사유를 적용해 의사의 의료행위에서 공간적 경계를 허문 것이다.
이는 인력부족을 겪고 있는 일부 수련병원에서 관련 의대나 의국 출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는 민원을 반영한 결과다. 실제로 일선 교수들은 개원의나 봉직의 중 해당 원 출신, 의국 차원에서 너무 힘드니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선 개원가는 "같은 의대, 같은 의국 선배들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절할 수 있는 개원의가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하며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개원의가 선의를 갖고 진료지원을 결심하더라도 행정기관 사이 불통으로 발목 잡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의원 진료를 마치고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할 수 있는지 관할 구청 등에 물었지만 "현행 법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자체가 중앙 정부의 조치사항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안내한 것에 유감"이라며 "비상진료체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지자체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유관기관과 협력을 강화하고 의료기관 외 의료행위 한시적용기준 등 새로 시행하는 정책을 다시 한번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상급종병 무급휴가 간호사, 종병서 근무 가능"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무급휴가를 받은 상급종합병원 간호사를 종합병원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은 입원과 수술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간호인력에 여유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일부 종합병원에서는 간호인력난으로 이같은 방안을 제안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대학병원들은 수입 감소로 무급휴가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급휴가를 나온 간호사들이 다른 병원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현장 간호사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무급휴가 중인 간호사가 자발적으로 나서지도 않을뿐더러 병원마다 시스템이 달라 적응도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비대면진료, 보건소도 가능"
보건복지부는 3일 비대면진료 시행 기관을 보건소와 보건지소로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공중보건의사 수백명을 수련병원에 파견하면서 생긴 진료 공백을 비대면진료롤 메우겠다는 계산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1일 공보의와 군의관 154명을 파견했는데, 이달 7일자로 파견기간이 끝났다. 이에 110명은 기간을 한 달 더 연장하고 44명은 교체하기로 했다.
비대면진료 확대 역시 민원에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라남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 지역 보건기관에 공백이 발생한다며 보건소와 보건지소 비대면진료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따라 보건소 246곳과 보건지소 1341곳의 비대면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수도권 한 개원의는 "공보의나 군의관을 차출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또다른 문제를 만들고 있다"라며 "특히나 보건소, 보건지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일텐데 이들이 비대면진료 사용이 얼마나 원활할지 의문이다. 어르신들이 비대면진료를 이용하더라도 결국 약을 찾으로 보건지소, 약국을 가야 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