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업무 과중 겪은 의대 교수들 '번아웃' 호소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 "파국 막을 기회, 아직 있다"
전공의 대거 사직 이후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는 의대 교수들의 '번아웃'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두 달 간의 업무 과중을 겪으며 "살인적 근무 여건에 노출됐던 전공의들의 현실을 그간 외면해 왔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성균관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교수 근무시간, 업무 강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충남대병원 교수들에 이은 두 번째 근무시간·강도 조사 결과다. 조사 기간은 5일부터 11일까지, 조사에 응답한 성균관의대 교수는 총 228명이었다.
지난 1개월 기준 근무시간은 86.4%가 주 52시간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80시간 이상의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도 24.6%를 차지했다. 이중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7.9%에 달했다. 주 52시간 미만 근무 응답은 단 13.6%에 그쳤다.
24시간 연속근무 후 12시간의 휴식이 보장되는지 여부를 묻는 질의에는 73.6%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루를 꼬박 근무한 뒤에도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지난달 26일 전국 전공의 수련병원장에 공문을 시행, 법정근로시간 및 연장근로시간인 주 52시간 근무를 지켜 달라고 요청했다. 의대 교수들의 과로는 곧 환자 안전문제로 직결된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설명도 담겼다.
공문 시행 이후에도 현장에는 변화가 있었을까?
절반이 넘는 성균관의대 교수들은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지난 한 달 간 과로·소진 예방을 위해 진료·수술·검사 등 업무를 조절한 비율은 45.6%에 그쳤다. 이중 업무량을 50% 이상 줄인 사람은 단 세명이었다. '전혀 줄이지 못했다'는 답변은 54.4%였다.
의대 교수들의 '번아웃'이 "이미 시작"됐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는 정신적상태·신체적상태(CGI-S scale)를 지극히 정상인 1점부터 매우 불안정인 7점까지 부여하도록 했다.
교수 60%이상은 '중등도 이상의 문제가 있는' 4점 이상(신체 60.4%, 정신 65.2%)을 택했다.
80% 이상의 교수들이 현재의 여건에서는 앞으로 신체적·정신적 한계 상황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의 교수들은 향후 한 달 이내에 신체적, 정신적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는 설문결과와 함께 발표한 성명에서 "전공의 사직으로 발생한 대학병원의 진료공백을 의대 교수들이 완전히 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의대교수들의 과중한 업무는 이제 곧 한계상황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2022년 조사에서 전공의들의 주 평균 근무시간이 77.7%에 달했고, 20%는 100시간 이상을 근무했던 점도 언급했다.
비대위는 "교수들이 전공의로 수련 받던 시절에는 주 120시간 근무하는 것도 다반사였고 그래야 제대로 수련을 받는 것이라 여겼다"며 "두 달 간 과중한 업무 부담을 겪으면서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됐다. 살인적인 근무 여건에 노출되는 전공의들의 현실을 그동안 교수들은 애써 외면해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고 전했다.
정부가 전공의 사직으로 중증 및 응급 진료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2개월간 총 5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는 점도 짚으며 "막대한 예산을 전공의 근무여건과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환경의 개선에 진즉 투입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먼 미래의 의사 숫자, 의대 정원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당장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전공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수련 후에도 자신의 전문분야를 지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의대 정원과 관련해 "신입생 모집요강이 정해지기 전까지 물리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던 것을 언급하면서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눈 가린 경주마처럼 돌진하는 의료정책은 파국을 불러올 뿐"이라면서 "정부는 진정한 자세로 신속하게 국민과 환자들을 위한 대국적 의료정책과 의료사태 해결책을 제시하기 바란다.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