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후 국정 쇄신 분위기 형성…언론 브리핑 사흘째 멈춤
의료계 "차관 경질 대화 조건…국면 전환하려면 인사 불가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의대정원 확대 정책을 강행했던 행정부, 그중에서도 보건복지부 장·차관의 거취에 의료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국정 변화의 바람은 시작된 상황. 지난 11일 선거 결과를 받아들자마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한덕수 국무총리,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참모들이 줄줄이 사퇴를 선언하거나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국정을 쇄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쇄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추측들도 나오고 있다.
'쇄신' 대상에 의대정원 확대 정책 추진 드라이브를 걸었던 보건복지부도 빠질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사흘째 예정됐던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고 동향을 살피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의대정원 재논의 조건으로 박민수 제2차관 경질을 내세우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은 의대정원 증원 정책 관련 보건복지부와 대화 조건으로 박 차관 파면을 제시했다. 단순 경질을 떠나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강도 높은 주장이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교 비대위) 역시 진정한 대화를 위해 박 차관은 빠져야 한다고 했다. "대화의 장 마련에 걸림돌이 된다"라고 지적하며 언론 대응에도 나서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정치권에서도 박민수 차관의 경질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미 지난달 27일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공동 선대위원장은 "정부 여당이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라며 "의새와 같은 거친 언사로 대화 분위기를 무너뜨린 박 차관을 경질해야 한다. 의료계와 대화의 길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밝히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총선 직후 구체적인 이름까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의대증원 1년 유예 및 책임자 경질을 요구했다.
통상 정책 추진이 원활하지 않아 행정부처에 책임을 물을 때 경질 1순위로 꼽히는 대상은 '장관'이다. 그러나 이번 의대정원 확대 등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유난히 박민수 차관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연일 정책 추진 의지를 강조하고 홍보하기 위한 브리핑에 박 차관이 전면에 나서면서 의료계를 자극하는 강경 발언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정부를 향한 반감을 깊게 만들었다.
한 의료계 인사는 "대통령실도 쇄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대외적으로 정책 추진의 책임자는 조규홍 장관인데 대외적으로 미운 털이 박혔다는 이유만으로 박 차관만 경질하는 것은 모양새가 아무래도 이상하기 때문에 장관과 차관을 모두 교체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총선 참패에 따라 국면 전환을 위해서도 보건복지부 인사 조치는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동안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2000명' 의지를 굳건히 지켜왔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2000명 증원은 최소한의 규모"라고 못을 박음으로써 퇴로가 차단됐기 때문에 이를 번복하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책이 책임자 경질이라는 것이다.
한 의사단체 임원은 "그동안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에 대해 너무 확고한 입장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숫자를 다시 검토하겠다고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꾸려면 책임 있는 인사 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라며 "지금쯤이면 입시 요강이 나와야 하는데 교육부가 5월로 미뤄둔 상태다. 의대정원 문제를 마무리 지어야 할 시간이 몇 주밖에 남지 않은 만큼 국면 전환을 위한 인사 조치도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총선이 끝났으니 5월에는 그동안 미뤄뒀던 보건복지부 인사, 의료개혁 특위 구성 등을 통한 인사가 있을 것"이라며 "벌써부터 실장급 승진 등의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