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규 이화의대 교수,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기고문 통해 증원 문제점 짚어
정부 예산지원 '공언' 언제까지 가능?…인력 확보해도 바로 교육에 투입 불가
의료 상황 감안하면 학생 임상실습 어려워…졸업 후 교육은 누가·어디서·어떻게?
"의대 증원으로 촉발되는 의료·교육 현장의 문제는 예산만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권복규 이화의대 교수(의학교육학)가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에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에 미칠 영향' 기고를 통해 '2000명 증원'이 한국 의료와 의대교육에 초래할 심각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먼저 현재 의학교육의 현실부터 돌아봤다.
기초의학 교수의 정원은 적정 수에 현저히 미달하고, 조교 등 지원인력조차 충분히 지원되지 않는다. 카데바의 기증은 학교마다 매우 큰 편차를 보이며, 실험실습 시설과 장비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대학 등록금은 십년 이상 동결돼 전제한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은 크게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임상에서 실습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상 교수진은 격무에 시달리며 진료와 연구에 치이다 보면 거의 모든 의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게다가 환자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학생이 직접 진료에 참여하거나 관찰하는 데 대한 거부감은 점점 커지고 있으며, 단시일 내 해결도 난망하다.
과연 이런 문제를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카데바 수급도 돈만으로 풀 수 없고, 기초의학 교수 양성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더해 교수직을 원할 만큼 매력적인 처우도 보장하기 어렵다.
이같은 상황에서 2000명이 증원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부가 주장대로 예산을 지원하면 강의실, 실습실, 실험실흡 장비 등 하드웨어는 쉽게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운용할 인력은 그렇지 않다.
권복규 교수는 "의학교육에는 교수뿐 아니라 각종 해부기사 등 보조인력이 필요하고, 시뮬레이션센터와 같은 실습 시설 운영에도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인력 교육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한번 채용하면 쉽게 해고하기도 어렵다. 즉 그들의 인건비는 고스란히 학교에 전가되며 만약 정원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부담으로 남는다"라면서 "어찌어찌 인력을 채용해도 실제 교육에 투입해 교육 효과를 내는 데는 경험과 시간이 또 든다. 그동안의 혼선은 고스란히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예산지원에도 의문을 표했다.
권복규 교수는 "의대 교육에는 초기투자 비용뿐만 아니라 유지관리에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든다. 정원 증가로 인한 새로 들여놓은 실험실습 장비들은 물론 기존장비의 유지관리와 교체도 필요하며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라면서 "정부는 과연 언제까지 예산을 지원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의대 증원에 환호한 대학본부에서는 언제까지 의대에 비용을 들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등록금을 대학 마음대로 올릴 수 있을까"라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임상실습이다.
예를들어 200명으로 편제된 의대에서 본과 3학년과 4학년이 실습을 나간경우 실습병원은 최소 400명의 학생을 수용해야 한다. 학생 400명의 수용을 위해서는 병원 규모가 최소 1000병상은 넘어야 하며, 임상 교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1000 병상의 상급 종합병원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후 인구가 100만명은 돼야 한다는 점이다.
권복규 교수는 "인구 100만명 이상 되는 지방자치단체가 몇이나 되나. 그 지역 인구 모두가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그 병원에만 온다고 보장할 수 있나. 만약 교육병원 유지를 위해 경증 환자를 놓고 지역의 1차, 2차 의료기관과 경쟁해야 한다면 해당 지역 의료 생태계는 초토화되고, 그렇지 않다면 병원은 만성 적자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의대생들의 학습 생태계 파괴도 우려했다.
권복규 교수는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도 의사들의 질이 유지된 것은 우선 의학에 입문하는 자원의 질이 매우 우수했고, 수동적 학습자가 아니라 의대라는 학습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고 의학을 습득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라면서 "학생 스스로의 학습은 물론 선배가 후배를 교육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문화가 그동안 정착됐다. 하루아침에 정원의 몇 배를 늘리는 것은 이런 학습생태계를 파괴하고 교란시킨다. 각자에게서 동질감을 확인하고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발달하는 일은 이런 급조된 환경 속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제한 여러 문제들은 기본의학교육(Basic Medical Education·BME)에 한정된다. 전공 수련이라는 졸업후 교육(Graduate Medical Education·GME)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는 진단이다.
권복규 교수는 "현재의 전공의 TO는 수련기관의 교육·수련 역량이나 수련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전공의를 피교육자가 아닌 저렴한 인력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5000명의 신규 전공의가 해마다 배출된다면 이들은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있을까. 이들에게 누가, 어디서, 어떤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라면서 "공공의료시스템을 채택한 몇몇 나라들에서처럼 1∼2년간 기본임상수련을 받게 한 후 일반의로 일하게 할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전문의 수련은 어려워질 것이며, 그렇게 '전문의'가 배출된다 한들 그들의 역량은 의문에 부쳐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은 의료와 교육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제안이다.
권복규 교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 해도 이런 모든 요소들을 신중히 살펴본 다음 여러 각도에서 시뮬레이션해 보고 현재의 의료와 교육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로 국한해야 한다"라면서 "의학교육은 단지 의과대학만의 문제만이 아니며, 전체 의료시스템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