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대, '감은제' 개최…의학교육 위해 시신 기증 57인 추모

고대의대, '감은제' 개최…의학교육 위해 시신 기증 57인 추모

  • 박승민 기자 smpark0602@gmail.com
  • 승인 2024.04.22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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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범 학장 "기증자 고귀한 결정 헛되지 않도록 교육에 힘쓰겠다"
엄창섭 교수 "의대생, 희생·헌신할 수 있는 의사로 성장해야"

ⓒ의협신문
고대의대가 지난 4월 18일, 의학교육을 위해 헌체하신 고인들의 뜻을 추모하는 ‘감은제(感恩祭)’를 거행했다. ⓒ의협신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이 지난 18일 오후 4시 30분 의과대학 본관 유광사홀에서 의학교육을 위해 헌체하신 고인들의 뜻을 추모하는 '감은제(感恩祭)'를 거행해 작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헌체하신 기증자 57분의 숭고한 뜻을 추모했다.

이날 행사에는 의대생과 교직원, 유가족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개식을 시작으로 △묵념 △편성범 의과대학장 식사 △해부학교실 엄창섭 교수 추모사 △시신 기증인 호명 △대표자 헌화 순으로 이어졌다.

편성범 학장은 "매해 진행하고 있는 감은제를 통해 의학발전이라는 큰 뜻을 위해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릴 수 있게 돼 뜻깊다"며 "기증자분들의 고귀한 결정이 헛되지 않도록, 학생들이 진정한 의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엄창섭 교수는 추모사를 통해 "시신 기증을 시작으로 시작된 해부학 실습 과정은 학생들이 고인과 함께 인간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같이 알아가고,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그리고 생명의 귀중함에 대해 고민하고 깨달아가는 시간"이라며, "학생들이 직접 눈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인체를 느끼고 확인하며 환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의사로 성장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감은제에서 편성범 의과대학장을 비롯해 신나미 간호대학장, 유임주 해부학교실 주임교수가 대표로 제단에 헌화했다. 의대생과 교직원, 유가족은 기증자들의 존함이 새겨진 감은탑에 국화꽃을 내려놓고 묵념했다.

고대의대는 매년 4월 세 번째 목요일에 의학교육과 의학발전을 위해 헌체하신 고인들의 뜻을 추모하는 합동 추모제 '감은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1996년 기증한 분들의 존함을 새긴 감은탑 건립 이후, 고대의대의 시신 기증 운동 활성화와 사회적인 인식 변화로 시신을 기증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해 1982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총 1531구의 시신이 기증되었으며, 시신 기증을 약정한 사례도 8499명에 이른다.

아래는 엄창섭 교수의 추모사 전문.

기증자 분들의 뜻을 생각하며…

지금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함께 하였던 귀한 몸을 당신의 자손들이 당신보다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망설임 없이 헌체하고 영생의 길을 떠나 고인을 기억하고자 하는 감은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먼저 시신을 헌체하신 고인의 명복을 빌며 뒤를 이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매년 행해지는 감은제에서는 그해에 시신을 기증하신 고인의 유가족 중 한 분이 고인께서 어떤 마음으로 몸을 기증하셨는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그리고 고인과 함께 공부할 학생들에게 어떠한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는지, 그리고 유가족들은 고인을 회상하면서 학생들에게 그리고 학교에 어떤 당부의 말을 하고 싶은지 등에 대하여 말씀을 해주곤 하셨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올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하여 교육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아 유족을 비롯한 국민께서도 많이 걱정하고 계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이번에는 유가족으로부터 고인에 대한 회고를 듣는 대신, 고인들과 함께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고인들을 대신하여 유족 여러분과 학생들에게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1학년 학생들은 개강 첫날이었던 지난 2월 19일 고인들을 대면하는 의식을 치른 이후, 아직 고인들과 함께 하는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고인들과 만나는 날, 학생들은 고인께서 남기신 당부의 말씀을 같이 나누었고,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이 세상의 아픈 이들을 위해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학생들이 수업을 받지 않고, 고인과의 공부를 잠시 뒤로 미루고 있는지, 그 송구한 마음을 고인들께서는 잘 이해하고 학생들이 돌아와 같이 공부할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리라 확신합니다. 조속히 이번 사태가 해결되길 바랍니다.

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는 고인들은 모두 생전에 기증자 본인의 뜻으로 기증을 결정하고, 힘들어하는 유족을 설득시킨 분들이고, 유족들은 고인의 의지를 존중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우리 학교에 몸을 기탁하셨습니다. 

학생들은 고인과 함께 인간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같이 알아가고,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그리고 생명의 귀중함에 대하여 고민하고 깨달아가는 시간을 같이하게 됩니다. 

즉, 시신기증으로 시작된 해부학 실습 과정은 고인들의 박애정신과 희생정신, 애타정신이 어떻게 실천되는지를 직접 눈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확인하면서 환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의사로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고인들은 필요에 따라 고인의 의사에 어긋나게 이 학교 저 학교로 배부하거나, 부족하다고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는 교육재료도 아닙니다. 고인들은 온몸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이며, 우리의 동료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유족들에게 우리 학교를 믿고, 우리 학생들에게 몸을 맡기신 고인의 뜻을 한 치도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학생들도 돌아와 고인과 같이 공부를 하게 될 때, 실력을 갖추고 생명을 귀히 여기는 좋은 의사가 되어 사람들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기를 원하는 고인들의 뜻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며 시신 기증에 기꺼이 동의해 주신 유가족 여러분에게 건강과 행복이 항상 같이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4.04.18.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감은제
엄창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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