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 미국 이주 상담 의사 폭증 "심정적으로 지쳐"
이민업체 특기자·고학력독립 이민 세미나 신청 3배 증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반발한 의사들이 국내 미래 의료 환경을 비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미국의사면허 취득 도전을 넘어, 온 가족 미국 이주를 고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이민 중에서도 투자이민 Top4에 해당한다. 전통적으로 미국 투자이민을 많이 한다는 얘기다.
미국 투자이민(EB-5)은 일정 금액의 투자를 통해 미국 영주권을 얻는 방법. 대다수 한국인들이 진행하는 간접투자이민의 경우 최소 80만불을 투자하고 10명 이상의 직-간접적인 고용을 창출했을 때 투자자와 동반 가족에게 미국 영주권을 부여한다. 투자이민은 투자금이라는 허들이 있지만 그에 반해 자금 외에 다른 신청 조건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의사는 원래도 투자이민을 많이 하는 직군 중 하나였다. 국내 이주업체 국민이주㈜는 올해를 기점으로 의사들의 상담이 늘은 것은 물론, 양상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유리 미국변호사(국민이주㈜)는 "이전에는 자녀의 영주권을 목적으로 진행이 많았다"면서 "올해를 기점으로 미국으로 온 가족 이주를 목표로 상담을 진행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밝혔다.
의료 사태를 직접 언급하면서 "최근 상담했던 선생님 한 분은 지난 20년 동안 연차를 제대로 쓴 적이 없을 정도로 진료를 보셨다고 했다"면서 "최근 사태 이후 심정적으로 너무 지쳐서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고도 전했다.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접근 중인 이민은 투자이민, 특기자 이민(EB-1), 고학력 독립이민(NIW) 3가지다.
투자이민, 특기자이민, 고학력독립이민의 공통적인 강점은 주신청자 1인의 신청으로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만 21세 미만의 자녀가 함께 동반으로 영주권 취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유리 변호사는 "본사의 특기자·고학력 독립이민 세미나에 평소 대비 신청이 3배 이상이 늘었다"면서 "모두 진지하게 상담을 받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특기자 이민(EB-1)은 이민국이 요구하는 능력의 증빙을 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심사를 받는데, 논문 출간 및 인용 횟수 등이 중요하다.
고학력 독립이민(NIW)의 경우, 2016년 12월 판례법 개정 이후 '미국에서의 활동 기반·입지·계획' 이 중요한 요건이 됐다. 특기자 이민에 비해 심사 기준이 용이한 편이다.
이유리 변호사는 "특기자 이민은 미국 대사관의 인터뷰 기조가 중요하다"며 "한국의 병원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갈 수 있는지를 보고 있다. 이런 부분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전공의 선생님이라면 추천드린다"고 말했다.
"고학력 독립이민 역시 미국 대사관 인터뷰에서 신청자가 미국에 가지 않는 경우에 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한다. 한국 병원을 닫는 부분에 관해 본인의 진술서를 공증받아 제출하라는 추가 서류도 오고 있다"면서 "실제로 미국으로 건너 가실 선생님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관심은 앞서 미국 의사면허 준비로 먼저 나타났다.
전국 전공의들이 업무 중단을 예고한 당일이었던 2월 20일. 미국 의사 면허 시험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인 USMLE KOREA에 접속이 몰리며 사이트가 차단됐던 것. USMLE KOREA는 미국 의사준비 고시 준비 사이트로, 한국 출신 미국 진출 의사들이 만든 커뮤니티다.
이주원 USMLE KOREA 개발·운영자(케이닥 미국지사장)는 당시 "홈페이지 개설 후 데이터 전송량이 초과돼 차단된 일은 처음이다. 다소 놀랐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젊은의사들의 움직임은 한국 의사 대거 해외 유출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사태 초반 미국의사면허 취득 도전을 생각했던 의사들이 이제는 이민까지 고려하게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미국의사면허 취득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의 해외 수련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행정처분 대상자는 제외토록 규정 하고 있다"고 말해 '협박'논란이 불거졌다.
국내 의대 졸업생이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의 의사시험인 USMLE(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을 치른 후, 레지던트 수련을 받아야 한다. 레지던트를 하기 위해서는 비자(J-1)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보건복지부의 해외 수련 추천서가 필요하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3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전공의들이 만약에 근무지 이탈로 행정처분을 받게 되면 이력이 남아서 추천서 발급이 어렵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이 막힐 수가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전공의 행정처분을 빌미로, 미국 진출을 막을 수 있다고 선언한 것. 이러한 정부의 압박 역시 의사들의 이민에 대한 관심을 더 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유리 변호사는 "최근 온 가족이 넘어갈 생각으로, 상담을 하는 의사분들이 많다. 한국에서의 병원을 접고 미국에서 의료 관련 일을 계속하실 선생님이라면 EB-1과 NIW을 추천드린다"면서 "이때 미국에서 어떤 일을 하실 지에게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을 해 보시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