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에 외래, 시시각각 울리는 전화까지 사실상 24시간 온콜
제자와 '함께'가 아닌 현실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
"자긍심이 무너졌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50을 훌쩍 넘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일주일에 한두 번 당직을 서고 있는 대학병원 교수가 뱉은 절망이다.
서울 한 대학병원 호흡기내과 A교수는 개인생활까지 내려놓고 당직을 서며 제자들이 떠나고 비어있는 의국을 두 달 넘도록 지키고 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밤을 꼴딱 새는 당직을 서면서 새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체감할 정도로 체력에 한계가 찾아왔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더 이상 현실을 버틸 수 없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의대 정원의 일방적 확대 이후 전공의와 학생들이 병원과 학교를 떠나는 상황을 겪으며 자긍심이 떨어졌고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진료, 교육, 연구 세 가지 역할을 하는 대학병원 교수에게 '진료' 단 하나만 남았다.
지난달 28일 늦은 밤 [의협신문]이 찾은 서울 한 대학병원 내과 의국에는 A교수만 덩그러니 남아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더듬더듬 두드리고 있었다. 전공의들로 북적이며 활기가 넘쳐야 할 자리는 텅 비었고, 그들이 벗어놓은 흰색 가운은 여전히 의국 한편에 걸려 있었다.
호흡기내과 A교수(57)는 어느새 일상이 된 당직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익숙해진 것은 어디까지나 업무일 뿐 이대로 지속되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비관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오더를 내는 것으로 시작하는 A교수의 당직은 이렇다. 일단 29일 아침 7시까지 12시간 동안 밤을 꼬박 새우며 병동 및 중환자실 입원환자 20~25명을 케어해야 한다. 호흡기내과 환자는 중증도가 높은 만큼 중환자실 입원 환자에도 특히 신경을 쏟아야 한다. 그 사이 응급실로 실려오는 환자도 커버해야 한다.
혹시나 발생할 위급상황 때문에 잠도 마음 편히 잘 수가 없다.
그는 "의사들 사이에서 보통 새벽 3~4시가 크리티컬 타임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쌓인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대다 보니 연락을 놓치기가 쉬워지는 마의 시간이다"라며 "자다가 못 일어날까 봐 간호사나 젊은의사들에게 꼭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상담실이나 빈 병실에서 눈을 붙인다"고 말했다.
날이 밝으면 곧바로 외래 진료가 예정돼 있다. 29일 오전에는 45명의 예약 환자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 외래가 끝나면 4~5시간 사이 입원 환자에게 문제는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저녁에 새롭게 올라온 항암 환자도 관리해야 한다. 이를 모두 정리하고 나면 저녁 7~8시가 된다. 사실상 뜬 눈으로 24시간 연속 근무한 셈이다.
그제야 A교수는 의국으로 돌아와 컵라면에 물을 받았다. 기다리는 3분 사이 환자 상태 알림이 계속 오고, 결국 불어 터진 라면을 먹으며 한 끼를 겨우 때운다. "제일 부러웠던 게 김 나는 짜장면을 먹는 것"이라는 소박한 소원도 전했다.
거의 3월부터 시작된 A교수의 바뀐 일상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5월에는 다섯 번의 당직을 서야 한다. 두 달 넘도록 일주일에 1~2번의 당직을 이어오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대학병원 내과는 분과 구분 없이 30여명의 교수진이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당직을 서는 교수들은 자신이 전공하는 분과에다 하나의 분과를 더해 두 개의 파트를 커버해야 한다.
당직은 당직대로, 외래는 외래대로 돌아가고, 전화기는 전화기대로 시시각각 울린다. A교수에 따르면 하루에 18~20시간은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린다. 당직이 아닌 날도 사실상 24시간 온 콜 대기인 상태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주 52시간 근무가 '의사'라는 이유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 5월 1일은 '근로자'를 위한 날이지만 의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듯하다.
밤샘 근무의 위험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WHO는 야간 교대 근무를 2A군(발암추정물질)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연령까지 더해진 야간근무의 위험성은 더 커진다. A교수 역시 "당직을 설 때마다 이제는 내가 정말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밤을 꼬박 새우면 전신 근육통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환자 상태가 악화돼 심폐소생술을 하는 날이면 통증이 이어져 내시경 시술 전에는 꼭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현재 대학병원 교수들이 처한 현실이다.
전공의가 없는 현실을 겪어 나가면서 가장 곤란한 상황은 외래 진료를 하고 있는데 병동이나 중환자실 환자 상태가 나빠질 때다. 외래를 중단하고 병동 또는 중환자실로 달려 올라가야 한다.
A교수는 "몸은 하나인데 2~3개로 쪼개야지만 가능한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 몸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체력의 한계 속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더 이상 '함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도 기꺼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있었지만 그때는 제자들과 함께였다. A 교수는 "코로나 때보다 지금이 4~5배는 더 힘들다"라며 "몸도 힘들지만 마음이 크게 다쳤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함께가 아닌 상황이 바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A교수를 힘들게 하는 부분.
그는 "현재 상황이라면 전공의도, 학생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며 "합의점이 빨리 나와야 할 텐데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아있는 교수들만으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돈을 생각했다면 대학교수로 있지 않았을 것이다. 진료, 교육, 연구 세 가지 분야에서 어느정도 가치 지향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를 선택했다"라며 "교수의 세 가지 역할 중 혹독한 진료만 남았다. 제자가 없으면 교수도 존재의 이유가 없다. 이번 사태는 돈보다는 다른 데 가치를 둔 교수들의 자긍심을 확 무너뜨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