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수렴 종료 후 검토 결과 이례적 공고 "선제적·보완적 조치"
의료계 "법 개정 추진이 무리했다는 것 방증하는 셈" 비판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 재난 단계가 '심각'일 때 외국의사에 국내 진료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상 입법 예고에 대한 의견 수렴을 거친 후확정된 내용을 공포했지만 이 시행령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별도 입장을 발표한 것.
의료계는 이를 놓고 보건복지부 역시 해당 정책이 무리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최근 홈페이지에 외국의사 국내 진료 허용 관련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의 입법예고 기간 동안 제출된 의견 검토 결과를 공고했다.
통상 시행규칙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수렴한 의견을 반영한 후 법제처 심사 등의 절차를 거쳐 확정 공포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견수렴 결과까지 따로 공고하는 것는 이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일 보건의료 위기 상황 발생 시 외국 의사의 국내 진료 허용 조항이 담긴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게시, 20일까지 의견수렴을 했다. 골자는 의료법 시행규칙 18조 외국면허 소지자의 의료행위 허용 항목에 '보건의료와 관련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심각단계 위기 경보가 발령된 경우로서 환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의료지원 업무'를 추가하는 내용이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외국 의사 의료수준을 감안할 수 있는 근거도 없이 의료인 부족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을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해당 개정안이 있는 페이지에는 1806개의 달하는 댓글이 달렸는데 90% 이상이 '반대' 의견이었다. "국민은 정당한 방식으로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고 수련 받은 의사에게 진료받기를 원한다"는 게 주된 내용으로 의료인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를 받는 국민들도 해당 입법예고안에 반대 목소리를 낼 정도였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듯 보건복지부는 제출 의견 검토 결과를 따로 공고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의료 재난위기 심각 상황에서 국민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이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이고 보완적인 조치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해당 조항에 따른 세부적인 내용은 없으며 앞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답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외국 의료인의 의료행위 승인은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이 보장될 수 있도록 외국 의사의 임상경력 등을 고려해 적절한 진료역량을 갖췄을 때만 의료행위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외국 의료인의 의료행위를 승인할 때도 정해진 기간 내, 정해진 의료기관에서, 국내 전문의 지도 아래 사전 승인받은 의료행위를 하도록 제한할 예정"이라며 "외국 의사의 자격, 의료행위 승인 절차, 승인 기간 등 사항을 향후 구체적으로 규정해 안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도 27일 브리핑을 통해 외국의사 진료허용 문제를 당장 적용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전 실장은 "외국 의사의 진료를 허용하더라도 국내에서 단독 개원을 하거나 이런 것은 아니고 국내 전문의의 지도하에서 일정 부분할 것"이라며 "현재는 규정을 정비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당장 언제부터 도입하겠다는 등의 결정은 현재까지 없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해당 법 개정을 디테일도 없는 상황에서 '왜 굳이 지금'이라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의사단체 임원은 "외국의사가 국내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은 지금도 이미 제한적으로 있는 상황에서 한 줄을 추가하는 부분은 현재 의대정원 일방적 확대로 촉발된 갈등 상황이 끝난 후에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문제였다"라며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여유를 갖고 해야 할 문제를 예민한 시기에 보란 듯이 추진하는 것은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의사면허는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만큼 단순히 의사뿐만 아니라 국민도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신중함이 필요하다"라며 "입법예고 후 의견수렴까지 거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따로 공고까지 하는 것 자체가 보건복지부도 이번 법 개정 추진이 무리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