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윤현배·명선정 교수 [JKMS] 발표 "이제라도 숙고하고 논의해야"
[플렉스너 리포트] 다시 봐야…의학계 "국시 자격 박탈·폐교 사태 재현될수도"
정부가 추진 중인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이 의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금이라도 정부·의료계·국민·사회가 의학교육의 미래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서울의대 윤현배·명선정 교수는 대한의학회가 발행하는 영문 학술지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JKMS, 발행인 이진우 대한의학회장·편집인 유진홍 대한의학회 간행이사) 39권 22호(6월 10일 발행 예정)에 실은 종설 'The Impact and Implications of the Flexner Report on Medical Education in Korea(플렉스너 리포트의 한국 의학교육 영향과 시사점)'을 통해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의과대학 증원은 단순히 숫자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의학교육 시스템에 큰 파장을 가져올 변화"라면서 "이제라도 단순히 의과대학 증원 이슈를 넘어서서 향후 의학교육의 큰 방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플렉스너 리포트의 저자인 아브라함 플렉스너(Abraham Flexner)는 미국의사협회 교육 책임자로 기초과학에 기반을 둔 '과학적인 의학'을 주창하고, 이를 위해 실험실과 클리닉에서의 직접적인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원칙에 기반해 의학교육 평가를 위한 5가지 기준(입학 요건, 교수 수, 재정 지원, 실험실, 임상실습실)을 제시했다. 플렉스너의 기준을 적용해 미국 의과대학을 평가한 결과, 1900년대 초반 160곳에 달했던 의과대학은 1930년 76개까지 줄었다. 시설과 재정이 열악한 수준 이하의 의과대학들이 대거 폐교된 것. 플렉스너 보고서는 미국 의학교육에서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을 확립한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플렉스너 보고서의 기본 원칙과 기조의 영향을 받아 기초의학(실험)과 임상의학(실습)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2000년대에는 의학교육 평가인증제도를 도입해 엄격한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KIMEE)은 세계의학교육연맹의 국제 기준에 기초해 의학교육 평가인증체계를 구축했으며, 평가인증에 관한 법적 근거도 확보했다. 실제 2018년에는 여러차례 평가인증을 통과하지 못한 모 의과대학이 폐교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의학교육평가원은 현재 ASK2026를 구축, 교육과정, 교수진의 질, 교육 자원, 사회 기반 시설 등의 평가를 전담하고 있다.
윤현배·명선정 교수 연구팀은 "표준화와 질 관리의 근간에는 의과대학의 주류로 자리잡은 학술 의학(Academic Medicine)이 있다"면서 "학술 의학은 왕성한 의학연구를 통한 학문 발전을 최우선 순위로 추구하며, 의학교육에서도 기본적인 진료 능력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국내 모든 의과대학의 공통된 목표가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의과대학 증원은 단순히 숫자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의학교육 시스템에 큰 파장을 가져올 변화"라면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의사를 양성할 것인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미래 우리 사회에 어떤 의사가 더 필요하고 그 의사를 어떻게 양성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충분히 숙고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구팀은 특히 "의사 양성의 양적 팽창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대비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양성하려고 노력했던 학술적인 역량을 갖춘 의사 외에 기본 진료에 특화된 실무 의사를 더 많이 양성해야 하는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제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이 아닌 각각의 사명에 따른 개별화된 교육과정이 필요한지, 이러한 변화를 준비하기 위하여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국민과 사회는 무슨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하는가 등 수많은 질문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채로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이제라도 단순히 의과대학 증원 이슈를 넘어서서 향후 의학교육의 큰 방향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의학계는 "2025년부터 매년 2,000명씩 의대생 입학을 늘리려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 인해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 확실하기에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교육의 질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상당수의 학교들이 ASK2026을 통과하지 못할 위험을 안고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재학생들은 국가 의사면허시험 응시자격이 박탈되며, 학교 자체가 폐교될 수도 있다. 즉 만약 이대로 정책이 강행된다면 한국은 1910년경 미국에서 일어난 수준 미달 의대의 대규모 폐교 상황이 재현되지 말란 법도 없다"고 우려했다.
의학계는 특히 "정부는 의사 양성의 양적 팽창이 가져 올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고, 이러한 일방적 팽창이 의대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면 모두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면서 "의사단체와 긴밀히 논의하며 협력하여 우리 모두가 원하는 학술적인 역량을 갖춘 의사를 양성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