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 돌봄제공자 98명 분석…하루 돌봄 13∼15시간·90% 우울감
서울대병원 연구팀 "재택의료 지원체계 필요"…[Muscle & Nerve] 발표
집에서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ALS) 환자를 돌보는 가족 10명 중 9명은 전문 의료진이 가정을 방문하는 재택의료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돌봄 가족 대부분은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10명 중 7명은 집에서 환자를 계속 돌보길 희망했다.
이선영·조비룡 교수(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와 김민선 교수(소아청소년과) 공동 연구팀이 집에서 루게릭병 환자를 돌보는 가족 돌봄제공자 98명을 대상으로 돌봄 실태 및 어려움을 조사한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Muscle & Nerve] 최근호를 통해 발표했다고 29일 밝혔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파괴되면서 근육과 운동신경이 서서히 감소하는 치명적인 신경퇴행성질환. 질병이 진행될수록 거동이 불편해지고,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의료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집에서 생활하는 국내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의 돌봄 현황에 관한 조사와 연구는 보고된 바 없다.
서울대병원 공동연구팀은 한국루게릭병협회 회원의 도움을 받아 진단을 받은 지 1년 이상인 루게릭병 환자의 가족 돌봄제공자 98명을 대상으로 돌봄 시간·우울증 및 정서적 어려움·돌봄 준비 수준·돌봄 역량 등의 현황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환자와의 관계는 60.2%가 배우자였으며, 자녀가 34.7%였다. 10명 중 6명은 기관절개술을 시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가족 돌봄 시간 중앙값은 평일 13시간, 주말 15시간으로 하루 중 절반 이상을 돌봄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돌봄자의 90% 이상이 우울감을 호소했으며, 10명 중 약 3명은 중증 우울증인 것으로 파악됐다.
가족 돌봄자의 신체적·감정적·서비스·스트레스·돌봄 활동·응급상황 준비·의학적 지식 등 8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 '돌봄 준비수준(PCS)'은 32점 중 11점에 그쳐 돌봄 준비가 충분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상황·인식·자기 능력·자신감 등 '돌봄 역량(CCS)'을 조사한 결과, 16점 중 8점에 그쳐 돌봄 역량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돌봄 준비와 역량이 부족함에도 가족 돌봄자 10명 중 7명(77.6%)은 요양병원이 아닌 집에서 환자를 계속 돌보기를 희망했다.
집을 선호하는 이유로는 ▲환자 및 돌봄제공자 모두에게 집이 편안해서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병원 서비스가 불충분해서 ▲가족이므로 같이 지내고 싶어서 ▲병원환경이 불편해서 등을 꼽았다.
가족 돌봄 제공자의 90% 이상이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전문 의료인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진료·간호 등을 제공하는 '재택의료'를 희망했다.
재택의료 서비스에 관한 요구사항으로는 '24시간 운영', '루게릭병에 대한 전문성', '원활한 의사소통' 등을 꼽았다.
연구팀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집에서 지내는 루게릭병 환자와 가족을 위해 돌봄 제공자 교육과 가정방문 의료서비스 등 재택의료 확대와 단기돌봄 서비스 등 새로운 지원체계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선영 교수(제1저자)는 "집에서 지내길 희망하는 중증질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택의료 서비스 등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크다"면서 "이번 연구에 참여한 루게릭병 환자의 가족 돌봄 제공자와 연구 진행에 도움을 준 한국루게릭병협회 회원들께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주관 '환자중심의료기술 최적화 연구 사업(PACEN)'의 지원을 받아 수행했다.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는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전으로 증가한 재택의료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20년부터 암·신경계질환 등 중증질환자를 위한 재택의료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