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경 비대위원장 "내 환자 90%는 경증"…"본래 역할 중증·희귀진료 집중"
전공의 복귀 확신 못 해도 휴진 감행 이유는…"의료도 교수도 더 못 버텨"
17일부로 무기한 휴진을 예고한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중증·희귀질환 등 필수진료는 이뤄질 것이라 강조하며 지지를 요청했다. 이번 휴진을 계기로 서울대병원은 최종치료기관답게 경증이 아닌 중증·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휴진을 사흘 앞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휴진에 돌입한 이유를 역설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의 단체가 서울대병원 교수 휴진에 거세게 반발하자 휴진의 취지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날 비대위는 "중증·희귀질환 환자들께 정말 죄송하다"는 말로 운을 떼며 "서울대병원의 '전체휴진'이란 다른 병의원에서도 진료가 가능하거나, 진료를 미뤄도 당분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환자들의 정규 외래진료 및 수술 중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휴진을 시작으로 서울대병원은 중증·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하는 진정한 최상급종합병원 역할에 충실하겠다"며 "17일 이후 휴진 중에도 중증·희귀질환 진료는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중증희귀질환 환자들이 쉽지 않은 진료 예약과 긴 대기시간, 짧은 진료시간을 겪는 일이 많았겠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 비대위는 "이는 1·2차 의료기관과 지역 의료기관에서도 충분히 좋은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일반 환자들과 경쟁하도록 그간 방치해온 탓"이라고 반성하기도 했다.
소아청소년과 콩팥분과 교수인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장은 "내가 맡고 있는 환자 중 최소 80~90%는 경증환자"라며 "휴진기간 동안 많은 환자들을 지역 1·2차 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암환자를 주로 보는 교수가 있는 등 진료과나 교수마다 경증환자 비율은 다를 수 있다"며 "중증환자 외에도 입원·분만 등 필수진료는 당연히 돌아갈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은 환자들의 예약을 속속 연기하고 있으며, 휴진기간 동안 급여 삭감은 물론 사태가 해결된 후 예약이 변경된 환자들을 위한 추가 진료를 감수한다는 전언이다.
비대위가 휴진 종료 조건으로 명시한 것은 전공의 행정명령 '취소'인데, 행정명령 취소로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휴진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그 이유로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과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두 가지를 밝혔다.
"행정명령이 취소된다면 전공의가 돌아올 거라 순진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취소건 철회관 관계없이 돌아오지 않겠단 전공의가 많았다"고 돌이킨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이제는 행정명령을 취소한다고 전공의가 돌아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휴진은 감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고, 이것이 침해받는 사태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자세가 아니다"라며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이 없었다면 적어도 서울대병원에서 휴진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전의 화물연대 등 파업으로 투쟁하던 타 직역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돌이키며, 이제껏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을 많이 반성했다"고도 했다.
비대위의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오승원 교수도 "전공의 복귀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다. 최소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은 만들려고 해야하지 않겠느냐"며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도 변한 건 없었다. 그럼에도 무언가라도 해야 진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말을 보탰다.
또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교수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는데, 이렇게 (스스로를) 갈아넣어가며 사직이 아니면 순직하는 상황을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며 "휴진은 근거와 협의에 기반한 의료정책 수립을 정부에 요구한 끝에,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솔직히는 휴진을 정말로 하고 싶지 않다"며 "휴진을 결행하기 전에 재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되거나, 휴진을 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접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은진 교수(서울대병원 신경외과)도 이 같은 상황을 전하며 "실제로 다른 병원 동료 교수 상당수가 대학교수직을 내려놓고 1차·2차 병원으로 개원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하은진 교수는 "진료 외에 연구와 교육을 모두 할 수 있는 대학병원을 택했지만 더 이상 근무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며 "사태가 해결돼도 지도전문의 수가 부족으로 전공의를 뽑을 수 없는 진료과가 실제로 많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