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쪽이 부러져야 끝날 것 같다."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의료계와 정부를 지켜보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최근 자주 들은 말이다.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 확대 정책을 일방적으로 '기습' 발표, 고수하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은 사직서를 내고 휴직 신청을 하며 자취를 감췄다. 그 시간만도 5개월째다.
정부는 오히려 정책이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지 못하도록 추진에 속도를 냈다. 각 의대별로 학생 증원 숫자를 배정해버린 것.
여기에다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에게는 행정명령 등으로 압박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전공의를 회원으로 두고, 회원 보호 의무를 갖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임원에게는 집단행동을 '교사'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경찰에 고발도 했다. 이 과정은 의사에게 잘못이 있다는 의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면서 수행 주체인 의사들의 협력과 공감을 철저히 무시하는 방책을 쓰고 있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대명제에 찬성하는 여론을 등에 업은 채 말이다.
사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견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규모'다. 규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의대의 교육 환경, 역량을 비롯해 지역 의료 현실 등 다양한 사항을 반영해 정해야 한다. 의대정원 증원이라는 거시적인 목표를 설정했다면 정부는 디테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했었어야 한다는 소리다. 겉만 도는 회의를 스무번, 서른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한 번의 회의를 하더라도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2000'이라는 숫자는 갑자기 등장했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와 운영하던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숫자 논의는 없었다고 인정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의료계에서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던 과제로, 정부가 생각하는 적정 증원을 미리 상의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기존 정원의 65%에 달하는 인원을 한 번에 증원하면서, '적정' 증원에 대한 상의를 이해 당사자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그 자체에서 현 정부의 '오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숫자를 공표하기 불과 한 달 전 각 의대에 적정 인원을 묻는 수요조사를 했다. 교육 여건이 되는지 현장점검도 했다. 2000명 숫자를 발표한 후에도 다시 한번 대학별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수요조사를 했다. 교원 증원, 시설, 기자재 확충, 임상실습 시설, 투자계획 등을 그제야 재차 확인했다. 지난 1일에는 전국의대에 의과대학 기초의학분야 교원 현황 제출을 요청했다.
정부가 각 의대에 제출하라고 요청한 자료들은 2000이라는 숫자를 정하기 전 취합, 적정 규모의 증원 인력 산출을 위한 근거로 활용했었어야 한다. 의료계의 반발이 우려됐다면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내밀며 더 적극적으로 설득했어야 한다. 더군다나 정부는 의사 수 증원이라는 든든한 여론도 있지 않았나.
어떤 정부도 해내지 못했다며 내세우는 것도 충분한 근거와 설득, 소통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했을 때에야 박수받을 수 있다.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은 결국 당장 내년에 닥칠 의료대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병원과 학교를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은 정부의 '불통' 모습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확고히 하는 듯하다.
지난달 있었던 국회 청문회 당시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의 질의가 생각난다. 그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사교육에 인력 문제가 생기는 것과, 의료 인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 문제인지를 물었다. 조 장관은 쉽사리 답변을 하지 못했다. 정부가 살리겠다고 호언장담 한 필수·지역의료가 당장 내년부터 위기에 놓이게 생겼다. 국민 생명을 볼모로 잡고 어떤 무모한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존재가 정부가 아닐지, 정부 스스로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길 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따뜻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