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정부의 일방적 2000명 의대증원 발표로 전공의들이 스스로 수련을 포기하고 진료현장을 떠났다. 보건복지부는 예고했던 기계적 업무정지처분을 내리며 복귀를 압박했으나 전공의 대부분이 오히려 사직 처리를 요구하며 버텼고 생활고를 겪으면서까지 흔들림 없이 투쟁 일선을 지키고 있다.
정부는 수많은 행정명령과 잘못된 대책들로 전공의들을 압박하고 회유했지만 일선의 사직한 전공의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정부는 그간 전공의들에게 내렸던 모든 행정처분을 '철회'하는 대신 복귀를 호소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행정처분 '취소'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각 수련병원들에게 오는 7월 15일까지 올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위한 결원을 확정해 보고하지 않으면 정원을 감축하겠다고 협박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하며, 마치 선심이나 쓰듯 사직 후 올해 9월 수련에 재응시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수련 특례를 인정해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꼼수'를 부렸다.
실효성이 전혀 없는 의대증원을 무리하게 추진해 전무후무한 의료공백 사태를 유발한 정부의 책임을 전공의와 수련병원에 떠넘겨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사태에서 슬쩍 발을 빼려는 몰염치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행정처분이라는 협박으로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자, 절대 허용할 수 없다던 사직 처리를 해주겠다며 빨리 결원을 확정해 보고하라는 정부의 의도는 너무도 뻔하다. 올 하반기 전공의 모집으로 사직 전공의들을 재편해 의료공백 사태를 수습해보겠다는 것인데, 현명한 전공의들은 여전히 미동도 없다.
기존 전공의를 빨리 사직 처리하고 새 전공의를 받아서 병원을 정상화하라는 보건복지부의 이번 조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기에 무한신뢰를 바탕으로 수년간 1:1 도제식 수련교육을 주고받고, 전문의가 되고 나서도 같은 분야를 걷는 선후배로서 거의 평생 동안 인간적, 학문적 교류를 나누는 우리 교수와 전공의들의 끈끈한 관계를 무시한 저열함의 극치다. 스승과 제자를 넘어 부모자식간이나 다름없는 관계를 그저 사무적인 고용관계로 치부해버린 행태에 참을 수 없는 모멸감까지 느낀다.
우리 교수들은 자식 같은 전공의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겠다며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극한 투쟁을 벌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없는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껴왔다. 그런데 정부는 우리 교수들에게 피같은 자식들을 버리고 새 자식들을 입양해 가르치고 일을 시키라고 강요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정부의 몰지각한 조치에 휘둘릴 일도 없겠지만, 우리 교수들도 애제자들을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정부는 이런 저급한 갈라치기 방식으로는 절대 현 의료공백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며,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 등 잘못된 정책을 철회할 때까지 우리 교수들은 불의에 저항해 병원을 나간 제자들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다.
정부는 지난 5개월간 강행한 의료정책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과 의료계에 사과함으로써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겠다는 진심을 보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미래의료의 주체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만이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