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버리는 스승은 없습니다

제자를 버리는 스승은 없습니다

  • 안양수 미래의료포럼 정책위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4.07.17 15:0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양수 미래의료포럼 정책위원장
안양수 미래의료포럼 정책위원장

지금 교수님들 중에서는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현재 한국에는 의사가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계를 보면 그렇게 오해를 할 만합니다. 지난 20년간 상급 종합병원의 의사 1인당 외래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였으니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급병원을 포함하는 의과 전체로 통계를 확장하면 정반대로 지난 20년간 의사당 외래환자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상급병원에서 나타나고 있는 환자 증가 현상은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 환자 쏠림 현상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환자가 줄어드는 추세에서 상급병원에만 환자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2017년경 의협에서 개원회원들에게 저렴한 이율의 대출을 제공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접촉한 시중은행에서 사업추진을 위해 내부자료를 조사했는데 개원의사들의 대출 부도율이 일반인 부도율보다 훨씬 더 높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개원 시장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입니다.

해가 갈수록 개원가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환자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환자수가 줄어든다는 것이 어떤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 의사라면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일당 진료비를 최대한 끌어올리며 버티고 있지만 환자 감소폭을 상쇄하지 못하면 경영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원가의 환자수를 보면 외과가 2000년 이전에 이미 정점을 찍고 줄어들고 있었고 그 뒤를 산부인과 소아과가 잇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과들도 좀더 버티었다 뿐이지 거의 모든 과들이 2012년경에 정점을 찍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제 통계상 환자 감소추세를 벗어난 과는 정신과, 단 1개과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원의가 환자가 없어서 경영난에 빠지면 결국 자기 전문과를 포기하게 됩니다. 건보 통계는 이들을 '전문과 미표시 전문의 의원'이라고 해서 따로 통계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문과 간판을 뗀 의원의 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며 2022년 6277 곳에 달하고 있습니다. 통계상 의원 1곳당 의사 수가 1.4명이니 대략적으로 9천명에 가까운 전문의가 간판을 뗀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환자감소의 폭탄을 피하지 못한 전문의들입니다. 그런데 좌파 선동가들은 이들이 돈을 쫓아 전문과 간판을 떼었다고 호도합니다. 이 세상에 자기 전문과 환자로 먹고 살 수 있는데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전문과 간판을 떼는 의사는 없습니다.

2021년 의료정책연구소의 '전국의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공의들 중 수련 후 개업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사람은 11.4%에 불과합니다. 이미 전공의들은 개원 시장이 노다지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많은 39.1%는 봉직의를, 그리고 32.7%는 전임의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임의의 51.8%는 교수를, 34.3%는 봉직의를 희망합니다. 개원하겠다는 전임의는 7.3%에 불과합니다.

개원가가 금광이 아닙니다. 많은 의사들이 자기 특기를 살려서 전문의로 먹고 살기를 원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리지만 결국 갈 곳이 없으면 찾는 곳이 개원 시장인데 일부 선동가들은 마치 의사들이 돈을 쫓아 개원 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의 의료체계는 전적으로 정부가 설계하고 운영합니다.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가 일찌감치 20여년전부터 환자수가 줄어들면서 곡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정부는 무엇을 했습니까? 기껏 전공의 보조금이나 대주며 전공의 확보하는 것에만 열심이었지 그렇게 해서 배출되는 전문의들은 개업해서 망하거나 말거나 나몰라라 하지 않았나요? 이제는 일부과가 아닌 거의 모든 과에서 환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과가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의 뒤를 쫓고 있는 겁니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의 급격한 인구 감소가 예정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의사 수를 대폭 늘려 근근이 유지되는 개원가 마저도 초토화시켜서 값싸게 부릴, 어쩌면 지금 전공의 정도의 월급으로 부릴 의사들을 다수 확보하겠다며 낙수 효과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게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국가입니까? 

사실 전공의 부족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측되는 상황이었습니다. 2004년 의사 수가 6만명일 때 20%인 1만2천명이 수련의(인턴, 레지던트)였습니다. 졸업생 수가 고정되어 있어서 세월이 흐르면 전체 의사의 수는 늘어나지만 수련의 수는 고정되기 마련입니다. 10년, 20년이 지나면 전체 의사들 중에서 수련의의 '비율'이 줄어든다는 것은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2000년대 초중반쯤에 복지부 관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인적구성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에 맞춰서 시스템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귀담아듣는 관료가 없었습니다. 2022년 의사 수는 11만명이 되었고 수련의 비율은 과거 20%에서 이제 11%로 떨어졌습니다. 인적구성이 과거 20년전 시스템을 그대로 담아낼 수 없게 바뀐 것입니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대학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바꾸겠다고 하는 걸까요? 뒷북도 한참 뒷북입니다.

전공의 비율이 줄어든 것 외에도 대학병원의 인력부족을 부추긴 것은 또 있었습니다. 우후죽순으로 세부 전문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인력공급측면에서 인력의 활용도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세부 전문과 의사를 많이 배출하면 그만큼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의사의 수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몇몇과에서 전공의 수련기간을 1년 단축했습니다. 수련기간이 줄어들면 실제 근무하는 전공의 숫자는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인력수급 용역을 발주했는데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들을 모두다 놓치며 도대체 무엇을 연구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전공의와 전임의의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력이 받쳐온 시스템입니다. 즉,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현행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기둥, 뼈대입니다. 과거 의료시스템을 설계했던 관료들은 이들이 가장 중요한 기둥인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무지한 관료들이 그 기둥을 무너뜨렸습니다. 아파트 인테리어를 할 때에도 절대 손대면 안되는 기둥들이 있습니다. 건물 전체의 하중을 떠받치는 기둥을 뿌리 채 뽑아놓고도 그걸 개혁이라고 포장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입니다. 후배들이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저임금을 버틴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래에 폭탄을 투척해 초토화시킨 것은 바로 정부입니다. 이들에게 돌아오라는 것은 자신들의 미래에 투척될 폭탄이 되라는 말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젊은 후배들이 가미가제 특공대입니까? 폭탄이 되어 자신들의 미래를 폭파시키라는 국가적 소임을 다하고 나면 그들에게 어떤 미래를 돌려드릴 겁니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가장 밑바닥에는 정부가 무능하다는 것과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급증하는 의료비에 골머리를 썩고 있지만 우리처럼 그 속에서 일하는 의사, 의료인들을 들들 볶아서, 악마화해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정부는 의료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에 의사들이 이해당사자라며 제외시키고 들러리로 세워두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 왔습니다. 그런 20년의 성적표가 형편없는데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사 탓을 하고 있습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습니다.

이번에 정부는 자신들이 건물 전체의 하중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뿌리를 뽑아 버렸습니다. 그래놓고도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무지합니다. 과거 경험에 의하면 여기서 접고 돌아가면 아마도 무자비한 보복의 장이 펼쳐질 겁니다. 다시는 정부 정책에 입도 벙긋 못하게 만들 겁니다.

2000년 의약분업을 겪고 나서 실제로 온갖 법을 다 바꾸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때 복지부 장관이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의료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국민들 앞에서 약속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의약분업이 자신들의 뜻대로 시행되자마자 의료법을 바꾸어서 의사들이 다시는 집단 행동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우고 특별법까지 만들어 의료계에 주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다시 회수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수가계약, 수가를 인하하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분풀이를 했습니다.

이번에 현행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입법들이 줄을 이을 것입니다. 새로운 국회에서 이미 그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 의료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대한민국 의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중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제자들에게 아직은 죽지 않았으니 돌아오라고 말하겠습니까? 돌아와서 임종을 맞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는 것이 의료인의 도리라고 말씀하시렵니까? 이제 교수님들의 선택의 시간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어찌 하시렵니까?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