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 투입해 연구용역 발주…수련실태 설문조사도
연구책임 최창민 교수 "보고서 채택조차 안 했다"
정부의 일방적 정책 강행에 반대하며 병원과 학교를 떠나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은 2020년에도 투쟁을 선택했던 경험이 있다. 9.4 의정합의 이후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고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수련환경을 바꿔보겠다며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도 진행하고 연구용역도 발주하며 정책 개선에 의욕을 보이는 듯했다.
의료계는 정부 주도 연구를 통해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수련비용 국가 지원, 수련환경평가위원회 위원 구성 변경 등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같은 주장을 약 4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의협신문]은 당시 보건복지부 의뢰로 만들어진 전공의 수련환경 실태 연구용역 보고서를 입수, 연구진이 제안했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동안 전공의 수련환경 실태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었지만 해당 연구는 2021년에 완성된 것으로 가장 최신 연구다. 현재 전국의과대학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창민 울산의대 교수(혈액종양내과)가 연구 책임을 맡았다.
보건복지부가 확인한 전공의 수련환경 실태 결과는?
해당 보고서에는 해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하는 수련환경 조사가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주도했던 전공의 수련환경 실태조사 결과도 들어있었다.
보건복지부는 대전협과 단위 병원 전공의협의회를 통해 2020년 11월 한 달 동안 웹 기반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2190명의 전공의가 응답했다. 응답 전공의의 1주일 평균 근무 시간은 80.55 시간이었고 최대 연속 근무 시간은 평균 35.8시간이었다. 1주일 최대 근무시간은 168시간에 달하는 전공의도 존재했다.
전공의법이 개정된다면 주당 근무 시간과 연속 근무 시간을 단축하고 전공의법 위반에 따른 벌칙을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벌칙으로 개정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응답자의 68% 이상은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역량을 상급 전문의에게 배운다고 답했고 교수에게 배운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독학으로 배운다는 응답자도 48%에 달했다.
술기 및 수술 등 환자 진료를 할 때 전문의에게 적절한 지도 및 감독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도 절반은 전문의의 지도는 있지만 감독 하에 진행하지 않거나 아예 지도 및 감독이 없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 주도 설문조사에 응답한 전공의 10명 중 7명꼴인 68%는 수련을 중도에 포기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과도한 업무량을 가장 많이 꼽았고 교수 혹은 선임 전공의의 압박이 뒤를 이었다. 다만, 28%는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전공의들은 수련 교육 이외 통계 교육, 타 진료과 수련, 의학 연구를 추가적으로 교육받고 싶다고도 했다. 수련 이후에는 36%가 봉직의로 근무할 것이라고 했고 30%가 전임의나 교수를 진로로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중장기적 진로에 '개원'이라고 답한 사람은 28% 수준이었다.
연구진이 제시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방안은?
전공의 수련환경을 확인한 연구진은 전공의 수련 환경과 수련교육과정 측면에서 각각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수련환경평가에 대한 문제점 및 개선방안도 내놨다.
현재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수련시간 개선책을 보면 연속 근무를 24시간으로 줄이고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확대를 제안했다. 전공의와 환자 보호를 위해 전공의 1인당 적정 환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며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전공의 1인당 담당할 수 있는 적정한 환자 수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 연구도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의료법을 개정해 병원 병상 당 의사 수 기준에서 전공의 수를 제외하고 수련환경평가 및 의료 질 평가 시 전공의 담당 환자 수 반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놨다.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의 필요성도 짚었다. 연구진은 "전공의 임금은 수련 지원 개념이 아니라 근로에 대한 보상으로 수련비용은 상대가치 체계에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라며 수련비용 지원 방식으로 수련병원의 전공의 수련책임평가를 통해 지원금 차등을 제시했다. 이런 평가는 병원으로 하여금 높은 질의 수련을 제공토록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또 "전공의와 전문의 수가 차등, 수련 수가 신설, 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에 따른 정부의 직접 지원, 관련 세금 신설 등을 통해 확보된 여유분을 지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라며 "향후 상대가치 개편에서 의사 업무량 상대가치에 전공의 수련 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수평위 개선책도 제시했는데 2020년에도 연구진은 전공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전공의 위원 숫자를 적어도 교수와 동수로 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다 수련 및 근로와 관련된 직역 전문가(교육, 인권, 노무 등을 교육하는 교수 혹은 실무자 등)도 참여해 수련환경 개선에 대해 외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교수, 전공의, 제3 전문분야의 전문가 위원 비율을 동수로 해 객관성 있는 수련환경평가가 이뤄져 수련환경 개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당시 2000만원이라는 비용까지 들여 수련환경 실태 확인을 위한 연구를 주도했지만 의료계 제안 내용을 4년 동안 전공의 관련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때와는 다른 형태지만 다시 한번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자 정부는 부랴부랴 수련시간을 단축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수련비용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수평위원 구성도 바꾸겠다며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까지 했다. 다만, 의료계의 제안과는 다르다.
연구책임을 맡았던 최창민 교수는 지난달 26일 대한의사협회가 주관한 대토론회에서 "2020년 젊은의사 단체행동이 끝난 후 이들을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교수들이 약속하고 정부도 연구까지 추진했다"라며 "연구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정부는 채택 조차 하지 않고 묻혔다. 결국 현재 해당 보고서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보고서에는 수련환경 시간, 여성 전공의 출산 등과 같은 인력 제도, 수련비용 국가 책임 들이 들어갔다"라며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수평위에 정부 인사를 더 넣어 전공의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전공의들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돌아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