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의 준비 끝에 첫 내한 공연, 준비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한국의 '인기'?
의사이자 비올리스트인 임민영 원장 "의료, 오케스트라, 비올라의 공통점은…"
진도아리랑으로 한국 정서와 나눔, 세계인과 함께 "의사·음악가 동료 많아지길"
전 세계 의사들이 자선 공연과 기부를 펼치는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World Doctors Orchestra)'가 오는 24~25일 드디어 한국에서 막을 연다. [의협신문]은 첫 내한 공연의 총괄을 맡은 LOC(Local Organizing Committee) 위원장이자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에 최초로 입단한 한국인, 임민영 원장을 만나 이번 공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임민영 원장은 맹연습으로 턱에 큼지막한 멍이 들었다며 자랑스레 내보였다. 연신 함박웃음을 지으며 진료실 안에서도 비올라와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줄줄이 얘기하는 모습은 엄연한 음악인이었다.
#너도나도 한국 오겠다고 난리…인기 너무 많아 '탈'
2008년 창단한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는 전 세계 2000여명의 의사 단원들로 이뤄져 있으며, 각국을 순회하며 자선 공연을 이어 왔다. 지난 16년간 42회 공연 중 한국 공연은 전무했다.
올해는 어떻게 한국 공연을 유치할 수 있었는지 배경을 묻자 임민영 원장은 "한국 의사들이 먼저 유치한 게 아니라, 전 세계 의사 단원들이 한국을 원했다. 입단하자마자 한국 공연을 꼭 하고 싶다는 요구가 물밀듯이 들어왔다"고 전했다.
오케스트라 내에서도 한국에서 공연하길 강하게 원했는데, 그간 한국인 단원이 없어 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민영 원장은 지난 2018년 입단과 동시에 한국에서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연기 끝에 마침내 올해 첫 한국 공연이 열린다.
'K-pop'과 'K-culture'로 한국을 향한 세계적 관심이 높은 만큼, 그야말로 '역대급' 인기였다는 후문이다. 통상 연주에 참석하는 단원은 70~80명인데 이번 한국 공연은 너도나도 지원하는 바람에 100명을 훌쩍 넘긴 대형 오케스트라로 편성해야 했다. 그럼에도 치열한 경쟁률 탓에 지원한 단원 3명 중 2명은 한국에 오지 못했다.
이 인기가 한국 공연을 준비하는 임민영 원장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임민영 원장은 "국내 오케스트라도 100명 규모는 거의 없는데, 100명이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너무 어려웠다. 결국 100명 규모 연습실을 구하지 못해 아예 홀을 빌려서 객석까지 연습공간으로 개조하기로 했다"며 "장소 외에도 100인분의 식사나 100명의 이동까지, 한국의 인기 탓에 예산도 업무량도 크게 늘었다"고 돌이켰다.
#"의료와 오케스트라는 똑같습니다"
인터뷰 중 임민영 원장은 즉석에서 비올라를 켜는 시늉을 하기도 하며 음악의 매력을 말했다. 의사가 비록 바쁜 진료 탓에 오케스트라를 하기 힘든 직종일 수 있지만, 오케스트라와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도 했다.
오케스트라는 각자 맡은 파트를 하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음악이다. 이 점이 의료에서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직원이 모두 협력 속에서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 일맥상통하다는 것이다.
임민영 원장은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도, 의료 현장에서 삐끗하는 소리나 사고 없이 환자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서도 조화가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오케스트라를 하는 의사, 자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남과 같이 합을 맞출 줄 아는 의사가 최고의 의사라고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비올라에 빠져든 이유도 '조화'다. 처음에는 몸으로 전달돼 울리는 비올라의 편안하고 풍부한 저음이 좋았는데, 다른 악기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비올라에 더욱 심취하게 됐다.
임민영 원장은 "비올라는 '중간'의 소리이기에 고음인 바이올린과 저음인 첼로·베이스의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남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악기라는 게 마음에 들었고,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오롯이 감동을 느끼며 연주할 수 있다"며 "때로는 바이올린과, 때로는 첼로와, 때로는 관악기와 합을 맞추며 다른 악기의 소리가 더욱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도록 받쳐주는 것이 비올라의 매력"이라고 했다.
#의사들의 '음악 나눔', 한국에서 더욱 커지길
임민영 원장은 우리나라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저변이 넓은데도, 그간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가 잘 알려지지 않아 한국의 동참이 늦었던 것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나라가 의사 오케스트라의 주축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임민영 원장에 따르면 한국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 의사 단원이 빠르게 늘었다. 2022년에는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에서 영감을 받아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가 창단됐다. 임민영 원장은 "이번 한국 공연에 참가하는 한국인 단원은 14명이고, 현재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 입단 절차를 밟고 있는 한국 의사들이 30~40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 한국 공연을 계기로 아시안 닥터스 오케스트라, 퍼시픽 닥터스 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을 추진해, 2~3년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한국에서 의사들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것이다.
또 다른 목표는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에서 객원 단원으로 세계의 의대생을 초빙하는데, 여기에 우리나라 의대생을 초청해 함께 해외 공연에 서는 것이다.
이번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 한국 공연의 수익 전액은 한국의 아동·청소년을 위해 기부된다.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의 활동 수익도 아동·청소년을 위해 쓰이며, 지역아동센터로 찾아가는 음악회를 정기적으로 연다. 임민영 원장은 "의료가 아닌 음악으로 재능기부를 할 때 가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미래세대인 아이들이라 생각했다"며 나눔의 초점을 10대로 맞춘 이유를 전했다.
이어 "기부를 통한 경제적지원뿐 아니라, 음악을 알고 성장하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큰 의미가 될 것"이라며 "절대적 빈곤뿐 아니라 문화로부터 소외되는 계층의 상대적 빈곤을 메꾸는 것 또한 사회적 책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의사들이 그 책무에 함께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늘도 진도아리랑을 연주합니다
월드 닥터스 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은 24일 부천아트센터에서,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첫 곡은 진도아리랑으로 시작한다.
임민영 원장은"장단과 박자가 어려운 곡이니 외국인 단원들이 악보를 보고 놀랐을 거다"라면서도 "그러나 아리랑만큼 우리의 음악을 세계의 보여줄 수 있는 곡은 없다고 생각해, 한국 작곡가가 만든 진도 아리랑 오케스트라 곡을 첫 곡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곡은 민족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장 시벨리우스의 47번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역시 우리나라 정서에 맞다고 판단해 골랐다.
공연은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으로 마무리된다. 임민영 원장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오케스트라 교향곡이기도 하지만, 장송곡을 연상케 하는 슬픈 선율이 현재 의료계가 맞닥뜨린 암울한 현실을 연상케도 한다"고 전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 참가하는 의사 100여명은 21일부터 사흘간 종일 총합주에 돌입한다. 임민영 원장은 "연주할 때만큼은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라는 마음으로 연습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모였기에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오늘도 진료 후 맹연습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