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지정제 올무에 가둔 정부…의료사고 법적 책임도 정부 몫"

"강제지정제 올무에 가둔 정부…의료사고 법적 책임도 정부 몫"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4.08.1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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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에서 '사망' 면책 제외 땐 실효성 없어…책임보험 강제가입 후 형사처벌?
의료과실, 영미법계열에선 아예 형사처벌 않고, 대륙법계열에선 '유죄' 매우 적어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 '합리적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방향' 정책토론회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은 10일 의협 대회의실에서 '합리적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현행 조정제도의 문제점과 합리적인 법안 제정을 위한 다각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은 10일 의협 대회의실에서 '합리적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현행 조정제도의 문제점과 합리적인 법안 제정을 위한 다각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벼랑 끝 필수의료를 살린다면서 필수의료를 벼랑 끝에서 밀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이 의료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민간 의료기관을 강제로 건강보험에 동원해 국가 의무를 대행케 했다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은 당연히 정부가 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또 의료사고에서 '사망'을 제외할 경우 법안의 실효성이 없으며, 책임보험에 강제로 가입시킨 후 처벌불원 의사가 없으면 형사처벌이 이뤄지는 문제점도 짚었다. 

최소한 필수의료에 헌신하는 의사들이 동의할 수 있는 법안이 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결국 관건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자체보다 법안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은 10일 의협 대회의실에서 '합리적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고, 현행 조정제도의 문제점과 합리적인 법안 제정을 위한 다각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광주북구을),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비례), 양동호 의협의료배상공제조합 대의원회 의장, 강대식 이사장,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홍순원 한국여자의사회장 등이 참석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의료분쟁 현황과 중재제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먼저, '자동개시' 사건의 존재다. 조정의 본질인 '양 당사자에 자율적 의사에 의한 해결'에 부합치 않으며, 한 당사자가 조정결과에 부동의하면 소송으로 이어진다. 결국 싼 값(조정신청액 1억원일 때 16만 2000원)에 할 수 있는 감정절차 역할에 그친다.  

전문성, 독립성이 중요한 감정부 구성도 문제다. 5인의 감정위원 중 의사는 2명밖에 안 되며, 민사절차에 필요없는 검사(또는 4년이상 검사경력 변호사), 전문성이 결여된 소비자권익종사자가 포함돼 있다. 게다가 감정부 회의는 출석위원 전원 찬성으로 의결돼, 사실상 거부권이 부여된다. 

과도한 조사권도 개선돼야 한다. 감정부는 자료제출요구권, 소명요구권 등이 부여되며, 과태료 부과까지 가능하다. 사실상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가까운 권한이 부여돼 있다.  

중재원에 대한 의료계의 낮은 신뢰도 역시 숙제다. 2012년 중재원 설립 당시 연간 6000건의 조정을 예상했지만, 현재 연간 2000건 정도의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사건 수 확대, 조정 성립 유도를 위해 온정적이고 불공평한 결정을 내리고 의사에게 수용을 종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액의 상향 조정도 필요하다. 또 현행 대불제도는 위헌소지가 크다. 보상액 3000만원으로는 조정이 어려워 소송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의료기관에 손해배상금 대불비용을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제도는 위헌 소지가 있다. 책임보험과 연계하는 게 타당하다. 

형사면책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조정·중재 성립 시 업무상과실치상죄는 반의사불벌이지만, '중상해'를 제외해 조정에 나서는 유인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 업무상과실치사죄 역시 제외돼 있다.

전성훈 변호사는 "현행 조정중재제도를 통한 통한 분쟁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살펴보면 한계가 명확히 노정된다"라면서 "의료사고에는 과실의 존재를 확인하기 힘든 gray zone이 있기 때문에 조정중재제도를 대한 과도한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 gray zone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보험이나 공제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의료분쟁 현황과 중재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전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의료분쟁 현황과 중재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을 촘촘하게 살피고, 합리적인 법 제정을 위한 제언을 내놨다. 

정부 특례법 제정안의 문제점부터 꼽았다. 

박형욱 교수는 "중증질환 등에 해당하지 않으면 필수의료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요양기관 강제지정을 하나. 필수의료가 아닌데 왜 강제지정, 강제수가, 강제심사로 의료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나"라면서 "의료사고에서 사망을 제외하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응급의료법의 임의적 감면제도는 작동하는지 검토는 했나"라고 되물었다. 

사망·중상해 등 예외를 많이 둔 점도 지적했다. 

박형욱 교수는 "조정제도는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제도인데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았다고 특례법 적용을 제외한다면 조정제도가 아니다. 예외 조항도 너무 많다"라면서 "책임보험에 강제로 가입시켜 놓고 처벌불원 의사가 없을 경우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필수의료를 보호하겠다는 목적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영국·프랑스·독일의 의료과실 형사처벌 사례와 함께 시사점도 공유했다.

박형욱 교수는 "영국·미국 등 영미법계열은 통상적 의료과실은 아예 형사처벌을 하지 않으며, 예외적으로 중과실에 한해 형사처벌을 하고 있다. 의료과실로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랑스·독일 등 대륙법계열은 과실로 생명·신체에 해를 준 경우 형사처벌을 하는 규정이 있지만, 의료과실로 인한 유죄는 매우 적다"라면서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을 남발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동해보복(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 관념에 기초했다. 이는 환자에게 필요한 필수의료의 몰락을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박형욱 교수는 의료계의 원칙을 강조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자체가 원칙이 될 수 없으며, '민간 의료기관을 강제로 건강보험에 동원해 국가 의무를 대행케 한다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박형욱 교수는 "계약에 기반한 영국·호주·프랑스 의료체계와 달리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에 기반한 의료체계에서 의료사고는 의료인의 고의 중과실이 아니라면 정부가 책임지는 게 합당하다"라며 "정부 지원 없는 의료배상 책임보험 강제가입은 필수의료 살리기가 아니라 필수의료 죽이기"라고 단언했다. 

형사처벌 최소화 정책을 세우고 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당위성을 알려야 한다.  

박형욱 교수는 "정부는 주요 국가의 의료과실 형사처벌 데이터에 근거해 형사처벌 최소화 정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 의료의 질적 수준을 고려했을 때 의료계가 결코 특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정부가 국민에게 먼저 밝혀야 한다"라면서 "중환자 의료 등만 필수의료로 정의해 특례법을 적용한다면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인한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의료계 동의 없는 법안 제정은 중단해야 한다.

박형욱 교수는 "조정 절차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법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자유의사에 따른 조정을 강제화하는 것이다. 필수의료를 살린다면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을 키우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특례적용 제외 단서도 최소화해야 한다"라면서 "의료계 동의 없이 양두구육식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추진은 중단해야 한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의료계와 합의하에 추진해야 한다"고 명토박았다. 

왼쪽부터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 강대식 이사장, 양동호 대의원회 의장, 나상연 감사.
왼쪽부터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 강대식 이사장, 양동호 대의원회 의장, 나상연 감사.

"중재원 내 별도 공제조합 설립 움직임 예의주시"
의료배상공제조합 TF 구성…특례법 관련 연구용역 발주 
의협·대의원회·공제조합 합심…"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안 관련 정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이 골자인데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판단이다.
 
환자변호인제, 의사사과법 등 필수의료를 더 망가뜨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의료분쟁조정원 내에 새로운 형태의 공제조합을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는 상황이다. 

의협 의료배상공제조합은 10일 정책토론회 후 간담회를 통해 향후 대응 방향을 밝혔다. 간담회에는 양동호 대의원회 의장, 강대식 이사장. 나상연 감사 등이 참석했다. 

양동호 의장: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안전망 회의를 7차례 진행했다.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합도 태스크포스팀을 발족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최근 보도를 보면 의사사과법, 환자변호인제 등 필수의료를 더 망가뜨리는 쪽으로 특례법이 제정되고 있다. 안전한 진료 환경 조성이라는 본연의 목적이 훼손되고 있다. 강제적으로 책임보험을 가입하게 해놓고도 환자가 원하면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사망 역시 면책조항이 없다. 모든 전문과에 대한 강제적인 책임보험 가입에는 반발이 예상된다. 또 중재원에 별도의 조합을 만들려는 시도 역시 그렇다. 국가적인 낭비다. 조합에서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의 바람직한 방향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책임보험 강제 가입에 대한 회원 의견도 듣겠다. 또 면책조건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살피겠다.    

강대식 이사장: 의협이 의개특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데 정부가 독단적으로 특례법 관련 개별 사안에 대해 발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협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의협 역시 의개특위 논의 사항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재 전체 의사회원을 살펴보면 책임보험 가입 30%, 의료배상공제조합 가입 30%, 두 가지 모두 가입 안 한 회원이 30% 정도다. 의료배상공제조합은 4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합의율도 일반 책임보험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의료분쟁조정원 내에 별도의 의료배상 관련 조합을 설립한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다각적으로 철저하게 준비해서 조합 경영과 회원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응하겠다. 
 
나상연 감사: 의료사고처리특례법 관련 내용은 의협 집행부 뿐만 아니라 의협 대의원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문제는 의사 회원 전체의 문제다.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가 합심해서 특례법 제정에 대응하겠다. 특례법은 환자 보상만 얘기할 게 아니라 필수의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법적 부담을 줄이고 소신 진료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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