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나쁘다고 민형사 소송…중증진료 의료진 메스 놓는다"

"결과 나쁘다고 민형사 소송…중증진료 의료진 메스 놓는다"

  • 송성철 기자 medicalnews@hanmail.net
  • 승인 2024.09.02 17:28
  • 댓글 3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 "소송 위험·막대한 손해배상 필수의료 공백"
"의사에게 민형사 책임 묻지 말아야…공적자원으로 환자 보상체계 갖춰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지난 8월 19일 의료분쟁 조정을 주제 토론회와 내부 논의를 통해 정리한 의견서를 발표했다. ⓒ의협신문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지난 8월 19일 의료분쟁 조정을 주제 토론회와 내부 논의를 통해 정리한 의견서를 발표했다. ⓒ의협신문

의료행위로 인한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민형사상 기소와 처벌이 빈번해지면서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과 지원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서울대학교의과대학·서울대학교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2일 의료분쟁 조정 주제 토론회와 내부 논의를 통해 정리한 의견서를 통해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들이 재판을 통해 과실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조사와 수사에 수시로 소환된다. 배상액 또한 흔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필수의료 공백 사태가 벌어지는 중요한 이유로 민형사상 소송 위험과 막대한 손해배상 문제를 꼽았다. 

실제 2013년 5월 복통으로 진찰받은 아이의 횡격막 탈장이 진단되지 않아 사망하자 의사 3명이 금고형으로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로 인해 소아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대거 진료 현장을 떠났다. 

2016년 흉부외과 의사 A씨는 폐 쐐기 절제술 과정에서 수술전 예상했던 것보다 병변 범위가 넓은 것을 확인하자 폐 기능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더 넓은 범위를 절제했다. 결과는 11억 원 손해배상하라는 판결서를 받아야 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집단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대 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항암치료를 받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구속을 당했다. 5년 만에 의료인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듬해부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의 지원율이 곤두박질쳤다. 

2019년 대구지방법원은 태반 조기박리에 의한 과다출혈로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서 의료진의 부주의 책임을 물어 산부인과 의사에게 금고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분만 담당 간호사에게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위험한 출산 진료를 포기한 채  부인과 진료만 하거나 폐업한 채 피부미용 분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최근 광주지방법원은 장폐색 수술 이후 아이가 사망하자 보호자에게 수술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며 광주·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소아외과 수술을 하는 의사에게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위원장 강희경 교수)는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침습적이며,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더라도 그 결과가 항상 양호하기는 어렵다"면서 "진료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의료행위를 수행함에 있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의료인에게 민형사 책임을 묻지 않되 환자는 공적자원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행위의 과실 여부를 비전문가가 제대로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짚은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의료분쟁의 과실 여부 감정과 조사·수사는 의료인으로 구성된 전문가 기구가 담당해야 한다"며 영국의 general medical council과 같은 면허관리 자율기구 등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의료분쟁 시 의료진은 환자 진료에 집중하고, 동시에 피해자는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의료진이 진료에 투여할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각 의료기관의 담당자 또는 배상 조합·전문가 기구 등 제3자가 신속하게 조사와 수사 과정에 참여해 조정·보상토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요양기관은 당연지정제로 정부에서 지정한 의료수가를 바탕으로 건강보험 재정으로 운영된다"고 지적한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공공 재정으로 공공서비스를 대행하므로 업무상과실치사상에 대한 형사소추 면제는 의료인의 보험가입 여부와는 무관하게 적용하고,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은 공공 재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배상보험료 역시 캐나다와 같이 공공 재정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은 '공소제기 불가' 등 위헌적인 요소를 담고 있고, 침습적인 성격을 가지는 의료행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법안이므로 폐기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대위는 "의료사고 발생 시 즉시 알리고 설명하며 사과 또는 애도의 표시와 함께 자율 보고를 통해 재발을 막는 시스템은 의료기관 인증평가기준의 하나로, 이미 많은 의료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다"면서 "법으로 강제하기보다는 교육사업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의료진이 기술한 내용을 과실의 증빙으로 사용하는 것을 환자안전법 일부 개정을 통해 법적으로 금한다면 보다 원활한 소통과 원만한 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