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수련병원 응급실 99% "위기 우려"…'위기 아니다'는 0명
응급의학의사회 "연휴 때 응급실 내원 1만명 증가, 어디로 가나"
가톨릭의대·서울의대 교수들 "추석 지나도 위기 심화, 현장 경청하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응급의료 위기감이 고조되는 와중 대한응급의학의사회가 실제 현장의 응급의학 전문의 목소리를 담은 설문 결과를 공개했다.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는 응답이 전무하고 90% 이상이 업무증가와 응급의료 붕괴를 우려하는 등, '전체 응급의료기관 99%가 정상 운영 중'이라는 정부의 입장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응급의학의사회가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일선 응급의학 전문의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설문을 9일 발표했다. 503명이 응답했고, 92%가 "현 응급실 상황은 위기"라는 답을 보내왔다.
특히 추석과 관련해 수도권 응급실의 전문의들은 97%가 위기로 인식했고, 수도권 수련병원 응급실에서는 무려 99%가 위기 상황으로 봤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수련병원은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으로 중증환자의 최종치료를 담당해야 하는 곳"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비수도권에서도 94%가 위기라고 답했다. 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위기가 아니다'라는 선택지로 답한 응답자는 아무도 없었고, 일부 응답자들이 '모른다'로 답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평소 응급실 일일 내원환자수는 2만명가량인데, 연휴에는 지난해 기준 3만명까지 증가했다. 추석은 명백한 응급의료 위기"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도 진료에 차질이 있는데, 연휴 동안 일평균 1만명 환자는 응급진료를 받지 못할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문만 열려있다고 응급실이 기능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운영돼야 환자들이 산다"고 덧붙였다.
병상수를 줄였는데도 응급실 의료진의 업무 부담이 증가한 상황도 짚었다.
앞서 99% 응답자가 추석 연휴 응급의료 위기라고 답했던 수도권 수련병원 응급의학의사들은 56%가 병상수가 축소됐다고 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허가 병상 자체를 줄이거나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병상 축소가 더 많이 이뤄졌을 것으로 봤다.
또 93%가 지난 3월 이후 근무 강도가 증가했다고 답했고, 특히 비교육수련병원에 종사하는 응급의학 전문의 99%가 근무 강도 증가를 호소하는 등 업무 부담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전국 408곳 응급의료기관 중 일시적 진료 제한이 발생한 곳은 1.2%인 5곳뿐"이라고 밝혔는데, 이와 관련해 의사회는 "교육수련병원 95곳을 제외하고는 애초에 전공의가 없었던 곳으로 통계의 눈속임"이라고 반박했다. 병상 축소 또한 응급의료 위기의 방증으로 봤다.
한편 대학병원의 교수들도 응급의료 붕괴를 우려하는 성명을 연달아 내고 있다.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응급실에 의사를 배치한다고 응급실이 정상 가동되는 게 아닌데, 정부는 단순한 숫자를 들며 응급의료 위기가 아니라는 등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추석 연휴를 어찌어찌 넘기면 상황이 좋아질 거라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이 갈수록 이탈하는 의료진이 늘어나고 현장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정부는 결자해지로 잘못된 정책(의대증원) 집행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이날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도 군의관 배치 등 정부의 응급의료 대책과 관련해 "징계로 협박하며 역량 이상의 진료를 강제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며 "응급의료진에게 최종치료 책임까지 묻는 민형사 소송부담부터 해소하고, 상급종합병원 필수진료 전문의 적정 수 고용을 보장해 배후진료를 강화해야 한다. 이제라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