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생각하는 '개혁'이란? "존경받는 단체로 거듭나야"
과학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이덕환 교수 '용어' 정리 눈길
"선무당급 엉터리 전문가 손아귀에서 벗어나 의사들이 전문가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10일 '바람직한 의료개혁의 방향'을 주제로 연 의료정책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올해 초 정부가 2000명 의대정원 확대라는 일방적 정책을 앞세우며 내건 단어는 '개혁'인데, 무리한 의대정원 확대를 반대하고 있는 의료계도 '개혁'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
화학자이면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의 발표는 특히 청중의 관심 받았다. 그는 "선무당급 엉터리 전문가 손아귀에서 벗어나주길 간절하게 부탁한다"고 의료계에 당부했다.
과학기술 정책과 비교해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 정책에서도 과학자는 관심 없고 행정학, 경제학, 경영학, 정치학을 하는 전문가들이 뒤집어엎어 엉망을 만들었다"라며 "엉터리 전문가에게 맡겨놨더니 50년 동안 들었던 이야기가 혁신밖에 없었고, 결과는 세계적으로 부끄러울 정도의 저효율 과학기술 집단이 됐다. 이제야 혁신의 늪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정책에 관심 갖는 유능한 의료계 인사가 드물어 굉장히 아쉬웠다"라며 "의료보험을 만드는 일 조차 의료계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갔고, 선무당급 엉터리 전문가들 탓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현재 의료 사태에서 잘못된 용어 사용도 짚었다. 그는 "용어가 굉장히 중요한데 아직도 일반 국민은 지금 사태를 의사 파업 때문이라고 표현하는데 파업하고 있는 의사는 한 명도 없다"라며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병원을 나가 이탈한 전공의가 문제 되고 있는 것이고, 전공의가 사표를 내고 나간 것은 파업이 아니다"라고 바로잡았다.
'의사 부족'이라는 표현 역시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 교수는 "부족은 적정치가 있고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인데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사가 몇 명인지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며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데 의대 정원을 가르쳐 주는 과학법칙은 없다. 합리적이라는 말이 맞다"고 했다.
"대안을 만드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지 일반 국민에게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봉건주의 시대에도 없는 해괴망측한 일"이라며 정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이은혜 의협 정책이사(순천향대 부천병원 영상의학과)도 의사들이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무리한 의대증원 시도로 겨우 6개월 만에 건강보험 제도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라며 "의료자원 중 핵심적인 인적 자원 의사들이 자부심과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제도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독이 완전히 깨진 상황이기 때문에 거의 혁명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정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라며 "정부는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무능력자만 도와주면 된다. 국민은 더 이상 정부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사들은 실력과 직업윤리로 무장해서 국민에게 존경받는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