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리베이트 관리시스템 개발 및 운영' 예산 15억 순증 편성
의료계, 불법 인식 팽배한 단어 사업에 사용 비판 "갈등 조장"
제약사 및 의료기기 업체가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흔적인 '지출보고서'가 보건복지부 예산 책정 과정에서 '리베이트'라는 단어로 둔갑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출보고서 관리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업 예산을 마련하면서 보다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
리베이트는 거래처와 원활한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제약사가 의사에게 제공하는 리베이트는 '불법'이라는 인식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해당 단어를 사용해 사업을 표시하는 것 자체에 의료계는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의약품·의료기기 리베이트 관리시스템 개발 및 운영(정보화) 사업 예산으로 15억6500만원을 책정했다.
생소한 사업명이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기존에 하고 있던 '지출보고서' 사업이며 이를 시스템화하는 작업이다. 실질적인 사업 수행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서 할 예정이다. 심평원은 지출보고서 관리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공급자 및 판촉영업자 현황 관리, 실태조사 실시 및 관리, 대국민 공개 과정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사업 예산안에 지출보고서를 통한 리베이트 방지 업무 흐름도도 담았다. 제약사, 의료기기 업체, CSO가 입력한 지출보고서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불법' 리베이트 의심 업체 및 수수자를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는 의약품·의료기기 거래의 투명성과 자정능력을 높이기 위해 제약회사, 의료기기 회사 및 유통업자 등이 의료인, 약사 등에게 제공한 법령상 허용된 경제적 이익 내역을 작성해 보관하는 제도다.
법에서 허용하는 경제적 이익은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제품설명회 ▲시판 후 조사 ▲대금결제 조건에 따른 비용 할인 ▲구매 전 성능 확인을 위한 사용(의료기기만 해당) 등 7가지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합법적'인 리베이트로 판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제도를 처음 도입, 올해부터는 제약바이오업체와 의료기기 업체가 낸 지출보고서 내용을 대외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대외 공개 범위는 이익을 제공받은 요양기관 이름과 학술대회 지원정보, 제품설명회 참여자에 대한 지원금액 등이다. 이익을 제공받은 의료인의 이름이나 임상시험 정보 등은 비식별 조치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출보고서 공개 의무가 있는 제약사와 의료기기 업체별로 개별 시스템을 구축하면 공개방법, 형식의 차이로 공개 제도의 부실화 및 자료 접근성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며 "지출보고서 기재항목의 표준화로 분석과 연계가 용이한 데이터 구조 설계로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방지를 위한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지출보고서'라는 단어에는 익숙해져 있는데, 이를 리베이트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엄밀히 말했을 때 '리베이트'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지만 해당 단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부정적이다.
한 의사단체 임원은 "현재 의료사태 원인 역시 현장을 잘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일일 수 있는데 해당 사업 역시 현장 배려가 부족하다"라며 "사업을 추진할 때 이름을 짓는 네이밍이 가장 중요한데, 이번 사업은 갈등을 더욱 조장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누가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하면 불법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이를 전면에 내세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는 예산 확보 과정에서 설정한 사업명일 뿐 확정 지은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출보고서 제도 자체가 합법적 리베이트를 말하는 것으로 예산 확보 등 행정적 과정에서 보다 직관적인 표현을 고민하다 사용하게 됐다"라며 "사업명을 최종 확정 지은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구축한 후 정식으로 오픈하기 전까지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합법적' 리베이트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