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③] 교육공백_"학생 없는데 교육부 지침이 무슨 소용" 비관
의료계 "지금 당장 복귀해도 의대 교육량 못 채워" 한목소리
의대·의전원협회, 휴학 인정 교육부에 건의 "앞으로 나아갈 때"
[기획]전공의-의대생 '공백' 파장 아직 안끝났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난 지 8개월째. 이들의 공백은 의료대란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추석 연휴 전후 2주를 '비상응급 대응 주간'으로 설정하고 응급의료대란 위기를 예의주시했다. 그러고는 걱정하던 '대란'이 없었다고 자화자찬하며 의료계를 또 다른 방식으로 압박하고 있다. 추석은 지나갔지만 전공의와 학생의 공백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의협신문]은 진료, 교육 영역에서 전공의와 의대생의 '공백' 여파를 짚어봤다.
[상]응급실 공백_비상응급주간 종료, 응급실 공백은 ing
[중]중증진료 공백_수술실, 중환자실 연쇄 위기 코앞
[하]교육 공백_2024년 교육 날아갔다 휴학 인정만이 답?
지난 2월 전국 40개 의대를 다니던 학생들은 '휴학'을 신청했다. 정부가 당장 내년부터 의대정원을 2000명 더 늘리겠다는 발표를 일방적으로 하고 나서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국회가 중재자로 나섰지만 변화는 없었다. 전공의와 의대생 공백으로 우려되고 있는 의료대란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를 모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의 만남이 결국 빈손 회동으로 끝났다. 정부는 의료개혁이 힘든 것이라며 뚜벅뚜벅 개혁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의대 현장에서 2024년은 텅 비게 됐다. 2024년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두 달. 이미 2학기가 시작됐지만 학생들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발표에 따르면, 현재 전국 40개 의대 2학기 수업 출석률은 2.8%에 그치고 있다. 이달 초 기준으로 등록금을 낸 학생도 전체 의대생의 3.4% 수준이다.
학생들이 당장 지금 복귀하더라도 의대의 교육량을 메우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게 중론이다.
전라도 A의대 본과 4학년 학생은 "어느 학년이든 현재 복귀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예 내년에도 복귀를 해야 하나 하는 회의적인 말들까지 나오고 있는 분위기"라며 "일부 의대는 진급 시험만 통과하면 된다고 하는 곳도 있는데 수업 자체를 들은 적이 없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어 "8월부터는 아예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추후 보충으로 채울 수 있는 분량이 아니다"라며 "특히 실습 학년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경상권 한 의대 교수도 "학생들이 처음부터 휴학을 신청한 이유는 이후에 복학해서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학사 일정을 검토해 봤는데 10월에 들어와서는 사실상 교육아 안된다. 학업량이 너무 많아 시험을 볼 수도 없다. 학습량을 줄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다"라고 꼬집었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일찌감치 교육이 불가하다며 유급과 휴학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교육부를 비판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지난 8월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의학교육 관점에서 봤을 때 전국 의대생 전원 유급은 사실상 확정"이라며 "해당 인원이 유급 또는 휴학되면 내년 3월 예과 1학년은 7700명이 된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교육부는 휴학도 인정할 수 없고 집단 유급도 안된다며 편법을 총망라한 학사일정 조정 가이드라인 등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 이를 반영해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대학까지도 등장했다. 가톨릭의대는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최종 재시험에 응시해 커트라인 점수를 넘으면 진급이 가능하다고 공지해 논란을 빚었다.
충북의대도 2024학년도 1학기 수업 기간을 내년 2월 말까지로 연장했다. 1학기에 수강 신청한 교양과목은 수강 취소를 허용하고 학점도 상한 학점(24학점) 보다 더 많이 들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공백이 자명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휴학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틈이라도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서울의대는 40개 의대 중 처음으로 학생들의 휴학을 승인했다. 8월 22일 의대 최고의결기구인 주임교수회에서 휴학 승인을 결정 했고, 지난달 11일 열린 주임교수회의에서도 휴학 승인이 시급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학장은 최종적으로 휴학을 승인한 것.
의대 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휴학 인정을 교육부에 공식 건의했다. KAMC는 의대 학습량을 고려했을 때 1년 교육을 한 학기 만에 할 수 없으니 1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휴학 인정이 답이라는 판단에서다. 교육부 역시 휴학 승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의대생의 휴학을 승인키로 했다. 다만 동맹휴학은 인정할 수 없으니 휴학신청 이유를 정정하고, 내년 3월에 꼭 복귀하겠다고 약속을 하라는 전제를 담았다.
수도권 한 의대 교수는 "학생들은 수업 거부를 하는 게 아니라 3월에 휴학계를 제출했고, 휴학할 권리가 있다"라며 "절차를 밟아서 휴학계를 냈는데 정부는 학사탄력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수업 거부하는 학생 취급을 한다. 학생들은 이를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한다.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고 진급하는 걸 학생들은 원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종태 KAMC 이사장은 "학생들이 수업을 전혀 듣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부에서 이야기하는 탄력적 학사 운영 가이드라인을 계속할 수는 없다. 가이드라인도 학생이 있을 때 이야기고 학생이 없으면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며 "휴학을 인정하고 내년 3월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규모로 봤을 때, 두 개 학년이 하나로 뭉쳐진 셈이니 이들 교육을 분반으로 진행한다든지, 영상 또는 실습 교육은 어떻게 할지 등 교육과정 편성을 새롭게 고민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내년 휴학 신청을 한 학생들이 복귀한다고 했을 때, 1학년은 현재의 2배가 되는데 이들이 6년 동안 계속 같이 가야 한다"라며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 만큼 7000명이 넘는 학생을 위해 교육과정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