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기자회견 열고 "정부 입장 변화부터" 못 박아
"인력추계, 전문가 중심·논의 과정 투명 공개" 주문
정부, 수급추계위 위원 추천 단체 10개 열거…18일까지
당장 내년 의대정원 2000명 확대를 일방적으로 발표해놓고, 정부는 뒤늦게 '의사인력 추계기구' 신설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실까지 나서서 위원의 과반을 의료계 추천 인사로 임명하겠다며 기구 설치에 힘을 싣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된 의료정책 강행으로 의료대란을 초래한 데 대한 사과가 먼저라며 "정부의 분명한 입장 변화 없이는 어떤 논의에도 참여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는 협회, 대한의학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와 긴급하게 논의 후 내린 결정이다.
최안나 대변인은 "세계최고 수준 우리나라 의료가 한순간에 붕괴되고 있는 의료대란 사태는 결코 전공의 탓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의제 제한 없이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도 2025년 의대정원 문제는 제외하자고 한다. 의제 제한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정부가 어떻게 의료계의 신뢰를 회복해 수습할지 구체적인 대책을 요구한다"고도 했다.
이어 "정부가 아무런 근거도, 준비도 없이 올해 2월 2000명 당장 증원하자 해서 시작해온 이 사태가, 내년도 1509명 증원을 그대로 강행하면 앞으로 수십년간 의대교육 파탄은 피할 수 없다"라며 "2020년 9.4 의정합의를 정부가 어기면서 의-정 신뢰가 파탄났다. 정부가 다시는 의료정책을 전문가 집단을 악마화하면서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의대교육 파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26년부터는 감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정부가 내걸고 있는 의사인력 추계기구는 의료계가 먼저 제안한 것. 다만 운영해 나가고자 하는 세부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의협은 "기구 구성과 운영의 원칙은 철저히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 및 운영해야 하고 그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의사수급분과위원회 구성을 예로 들었다. 해당 위원회는 2015년 12월 첫 회의를 시작해 2022년 1월까지 6년여 동안 40회의 회의를 가졌다. 위원 22명 중 17명이 의사로 이뤄졌고 회의 결과는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의협은 "우리나라 의사인력추계기구는 단순 자문기구가 아니라 의사결정기구여야 한다"라며 "논의 결과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해 의결하는 구조는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의견을 배제할 수 없어 과학적, 합리적 추계를 저해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의협의 요구를 정리하면, 의사인력 수급추계기구는 자문기구가 아닌 의결기구로, 의사가 과반수 이상 들어가야 하며,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닌 전문가 중심의 논의 구조를 법제화하고 협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안나 대변인은 "좋은 의사 양성과 교육, 수련은 의협, 의학계와 논의하고 병원협회등은 사용자 단체로 좋은 의사를 채용해서 운영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들 단체만 인력추계기구에 들어가는 것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의협은 "2025년 의대정원도 전문성을 확보해 독립적이고 투명한 논의가 가능한 기구에서 원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라며 "이대로 의대정원을 늘리면 내년 1학년은 7500명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고,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으면 3000명의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는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2026년 이후 의대정원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계가 이뤄질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도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등 분명한 입장변화를 보이는 것이 먼저라는 게 일관되고 단호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수급추계위, 직종 대표 과반 참여 최종 결정은 보정심
같은 날 정부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 구성 계획을 공식화했다. 세부 내용은 의료계의 입장과 달랐다.
의사와 간호사 인력수급추계위를 먼저 구성한다는 계획으로 오는 10월 18일까지 각 직종 전문가단체의 위원추천을 받은 뒤, 연내 그 구성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의사 인력수급추계위원회는 총 13인으로 구성하며, 이 중 과반인 7명을 직종 공급자단체에서 추천한 전문가로 배정한다는 계획이다.
인력 추천이 가능한 공급자단체로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 ▲의대교수협의회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 ▲대한병원협의회 ▲상급종병협의회 ▲중소병원협의회 등을 열거했다.
이들 전문가단체들로부터 모두 위원 추천을 받는다는 얘기다.
나머지 6인은 환자단체·소비자단체 등 수요자 추천 전문가 3인과 관련 연구기관 추천 전문가 3인이 들어온다.
인력수급추계위 추계실무 지원 기관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내에 의료인력수급추계센터를 설치하고, 직종별 자문위원회도 별도로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했다.
다만 최종적인 정책 의사결정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의 몫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금번 2000명 의대증원을 결정했던 바로 그 위원회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수급추계 결과와 연계한 인력정책도 보건의료제도의 틀 내에서 검토가 필요하며, 인력 정책은 공급자 뿐만 아니라 수요자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구성원이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추계 결과와 정책 제안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충분히 존중될 것이며, 인력정책에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여야의정협의체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의료계의 참여를 재차 촉구했다. 전제조건이나 사전적 의제를 정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러면서도 2025년 의대정원은 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다시 한번 못박았다.
조 장관은 "협의체가 가동되면 의대 정원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소상히 설명드리겠다"면서도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이미 대학입시 절차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