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원, 정부 주장 반박 현안분석 보고서 발표
과거 문헌 고찰, 전문가 인터뷰 등 통해 답 찾아
"1990년대 말 무리한 의대 신증설 영향" 못 박아
정부가 의사인력 부족 원인으로 의약분업 당시 정원 '350명' 감축을 꼽으며 의료계의 요구로 이뤄진 결과라고 했다. 이는 곧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발생하고 있는 공백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의사들에게 돌리는 계기가 됐다.
대한의사협회 싱크탱크인 의료정책연구원은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 배경 속에서 진행돼 온 것"이라고 선을 그으며 그전부터 의대 입학정원 감축 논의가 있어왔다는 점을 확인, 정부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10일 '의과대학 입학정원 변동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연구에는 안덕선 원장이 직접 책임자로 참여했는데, 전문가 인터뷰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의대 입학정원 결정 및 변동을 짚었다.
정부는 지난 2월 6일 전국 의대 입학정원 규모를 2000명 더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현 정원인 3058명의 65% 이상에 달하는 숫자다. 정원 규모는 재조정을 거쳐 1509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1981년 졸업정원제, 의대정원 30% 더 뽑았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의대 입학정원 변동이 파격적이었던 시기는 1981년, 졸업정원제 때다.
졸업정원제는 학과별 또는 계열별로 졸업할 때 정원을 정해놓고 입학할 때는 졸업 정원의 30%를 증원 모집하고 증원된 숫자에 해당하는 학생은 강제로 중도 탈락시키도록 하는 제도다.
당시 과열 과외와 재수생 문제 해소를 위해 시행됐는데 정원보다 많은 학생 수로 교육환경 및 임상실습 부실, 교수의 업무 과중 등 문제점과 대학별 여건에 대한 고려 없이 획일적으로 시행됐다는 문제가 잇따르면서 1987년 없어졌다.
졸업정원제 발표가 나온 시기는 1980년 7월 30일이었으니, 각 대학이 이를 준비할 기간은 불과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연구진은 "졸업정원제 시행 첫해 나타난 전형적인 폐해는 유명대 모집 정원 및 인기학과 미달사태였다"라며 "당시 서울대 전체 모집정원의 30%가 미달이었고 서울법대는 졸업정원 280명, 모집정원이 364명임에도 지원자는 344명으로 20명이 미달됐다"고 설명했다.
의대 교육 현황을 봐도 재적생 수를 연도별로 보면 어느 학교든지 1986년이 최대였다. 졸업정원제 첫 입학인 1981년 입학생이 특히 유급이 많았다. 특히 1981학번이 1987년에 졸업을 못하고 대개는 1988년, 1989년에 졸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부실교육의 전형으로 바로 졸업정원제 후유증"이라며 "이런 현상을 2025학년도 의예과 입학생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의대정원 감축 신호탄은? 무리한 의대신설
졸업정원제 시행 후 1996년까지는 15개 의대가 무더기로 만들어졌다. 1994년부터 98년까지 5년 사이에는 9개의 의대가 신설, 현재의 40개 의대 체제의 기본이 만들어졌다. 중간에 서남의대는 2018년 폐교했다.
의료계는 1997~99년 청와대, 국회, 교육부, 감사원 등에 의대 신설의 부당함, 교육의 부실함을 꾸준히 탄원 했다.
실제 한 신설 의대는 설립 4년이 지났지만 교수 수는 17명이었고 100명이 넘는 교수가 서울에서 강의를 지원해야 수업이 가능하도록 계획이 짜여 있었다. 서울에 있는 교수가 자주 지방의대를 내려갈 수 없어 1회 방문에 4시간 연속 강의하는 경우가 많았고 임상실습할 병원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1995년 인가를 받은 관동대 의예과 학생들은 학교 측이 부속 병원 건립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보건정책과는 의료인력의 장기적 공급과잉이 예상된다고 예측하며 각 대학의 정원 일괄 감축은 어렵기 때문에 기존 인가된 의대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고, 신입생 모집 중지, 정원 감축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결국 정부가 주장한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계 파업으로 의사 달래기 방편으로 의대 정원을 감축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김영삼 정부에서 이미 5개 의대를 신설했음에도 1996년 말 4개 의대가 무더기로 신설, 인가했기 때문에 정부는 1997년부터 3년 동안 더 이상의 부실한 의대 신설을 막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2000년 의료계 파업으로 생긴 국무총리 직속 '의료발전특별위원회'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김영삼 정부의 무리한 의대 신설 인가의 뒷수습을 함께 다루게 된 것이다.
연구진은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후 의대의 학사 편입학 제도가 없어졌고 정원외 입학 비율도 10%에서 5% 수준으로 줄었다"라며 "의대 입학정원 축소는 정부의 결정이었고 의사단체 요구가 아니었다"고 못 박았다. 현재의 3058명 정원은 2006년부터 확정, 이어지고 있는 숫자다.
연구진은 "역사적 사실과 자료 등에 의거해 1990년대 말부터 무리한 의대 신증설과 이로 인한 의사 공급 과잉에 대한 연구 결과, 의학교육의 부실 문제 등으로 의대정원 감축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다"고 했다.
연구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며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리한 정원 증원은 의학교육의 질 저하가 자명하다는 것.
과거 의대 무더기 신설은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 영향에 따른 것이고 이는 현재 국회에서 지역별 의대 신설 법안이 계속 나오고 있는 현재 상황과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진은 "급격한 정원 증가는 교수와 학생 사이 상호작용의 기회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학생의 임상실습이 관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라며 "80~90년대 급속한 의대신설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가장 취약한 점이고 2010년이 지나 의대 평가인증이 정착됨에 따라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약점"이라고 짚었다.
또 "정원 증가 규모가 큰 의대는 정상적인 임상실습을 위한 준비 시간 2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라며 "환자를 보는 임상교수가 신설의대 설립에 준하는 규모의 변화를 감내하고 정상적인 임상 환경에서 역량 있는 교육자가 되기 위해 2년의 시간으로는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급진적으로 선진국의 10년 치에 해당하는 증원을 한 해에 달성하려는 무모한 계획은 의학교육의 전문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공공정책의 심각한 기준 미달"이라는 비판을 더하며 "정부는 현재의 잘못된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