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운반·설치·홍보 비용 지원…전문가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 운영
순수·상업 미술 구분 않고 블라인드 심사로 학연·지연·장르 쏠림 배제
공모전 나이 제한 없어 20∼60대까지 연령층 다양…"진정한 작가 등용문"
인터뷰 - 장승현 안국문화재단 사무국장(디렉터·큐레이터)
새롭게 화단에 첫 발을 내딛는 신진 작가들만의 갤러리가 있다. 이 곳은 '신진작가의, 신진작가에 의한, 신진작가를 위한' 요람이다. 늘 작가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생각하며 움직인다.
신진 작가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는 전시 실무에서부터 한 사람의 독립된 작가로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컨설팅, 선배 작가, 전문가와의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성장을 함께 이끈다.
안국문화재단 AG갤러리.
AG갤러리는 지난 2008년 9월 안국약품 대림동 사옥내 비영리 문화공간으로 문을 연 후, 최근 과천 신사옥 2층에 규모를 넓혀 새로운 전시실을 마련했다. 미술 작품을 접하는 갤러리 역할은 물론 지역사회 문화시설로서도 손색없다.
그동안 안국약품이 지향해 온 문화 영역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통과 치유의 마음까지 담았다.
메디치가문, 카네기홀, 록펠러재단 등을 통해 잘 알려진 메세나(Mecenat·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AG갤러리 역시 그렇다.
'신진·지원·성장'은 AG갤러리의 고갱이다. 색다르지만 의미 있는 접근이다. 국내 갤러리 가운데 흔치 않은 시도다.
시간의 결을 더하면서 'AG신진작가대상', '안국미술상', '신진작가 멤버십 프로그램'도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개관 초부터 비영리 AG갤러리를 이끌고 있는 장승현 안국문화재단 사무국장(디렉터·큐레이터)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갤러리는 어떤 모습일까. 신진 작가들을 위해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지향하는 가치는 어디로 향할까.
AG갤러리는 2017년 안국문화재단이 만들어지면서 전기를 맞는다. 그동안 어떤 전시가 이뤄졌을까.
"안국약품은 2008년 9월 구사옥(대림동) 1층에 '안국약품갤러리AG'를 조성했다. 처음에는 큐레이터협회 등의 도움을 받아 외주 형식으로 기성작가 그룹전을 시작으로 제약회사 성격에 맞는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특히 의사, 미술치료사들의 전시인 '내 마음의 주치의-처방전' 기획전, 이광기·임혁필·권지안(솔비) 등 연예인 개인전 등 치유 목적의 전시들이 주를 이뤘다. 안국문화재단이 발족한 이후에는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중점을 두고 전문적인 미술 분야에서 돋보이는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과천 신사옥 이전과 함께 새 모습을 갖췄다. 1층 로비 공간을 지나 2층에 오르면 AG갤러리가 가장 먼저 맞는다.
"구사옥 전시장(110㎡·33.2평)은 임직원 휴식 및 방문객 접견 목적이었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신사옥으로 옮기면서 180.7㎡(54.7평)로 확장하고, 제1, 2전시실, 윈도우전시실, 미디어아트전용 전시실 등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다. 실내는 답답한 화이트 박스가 아닌 자연 채광과 특수조명을 이용해 개방성이 뛰어난 현대 감각의 전시장을 구현했다."
신진작가 지원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 화단에 입문하는 작가들에게는 전시 자체가 큰 부담이다. 전시공간은 물론 작품 운반·설치, 홍보, 도록제작, 현수막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많은 재단들이 있지만 모든 비용이 지원되지 않는다. 형식적인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는 쉽지 않다. 'AG신진작가대상' 공모전에 선정되면 모든 비용을 AG갤러리가 부담한다. 해마다 6명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모두 48명이 선정됐다. 작가로서 자립 토대 마련을 위한 다양한 작가 컨설팅도 이뤄진다."
AG 신진작가 공모전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선정 작가의 연령층은 20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외부에서는 '신진작가=청년작가'로 오해한다. 세계적으로 70∼80대에 데뷔한 작가도 많다. AG 신진작가는 말 그대로 화단에 입문하는 작가를 대상으로 한다. 전시 경험이 전혀 없는 작가를 우대하며, 상업 화랑이나 아트페어에서 전시 비용을 전액 지원 받아 개인전을 연 작가는 대상에서 제외한다. 기성작가들이 신진작가의 기회를 뺏는 것은 옳지 않다. 지원은 더 필요한 이에게 돌아가야 한다."
공모전 심사는 엄정하게 이뤄진다. 특히 기성작가는 심사위원이 될 수 없다. 왜 일까.
"공모전에 출품하려면 20점 이상의 작품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부담될 수 있지만 공정한 심사를 위한 갤러리의 선택이다. 심사위원은 미술비평가, 이론가들이 맡는다. 기성 작가는 배제된다. 작가들은 아무래도 특정 장르 등에 대한 쏠림이 있다. 쏠림에서 자유로운 비평가, 이론가들이 심사를 맡는 이유다. 비실명 포트톨리오 심사이기 때문에 학연, 지연 등도 개입할 수 없다. 모작이나 아류작은 당연히 심사과정에서 걸러진다. 수준이 미치지 못하면 대상작을 선정하지 않는다."
순수미술에만 가두지 않는다. 신진작가 선정작에는 일러스트도 있고, 사진도 있다.
"모든 예술은 콜라보되고 상업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신진작가 작품 영역을 순수미술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블라인드 심사이기 때문에 학연, 지연, 선입견이 배제되고 어떤 작품이 뽑힐 지 가늠할 수 없다. 일러스트도 상업적으로 활용될 뿐이지 미술이다. 순수미술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굳이 상업미술 여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신진작가 대상 선정 작품 중에는 회화도 있지만,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공예와 도자를 이용한 설치 작품, 일러스트 작품, 사진 작품도 있다."
혜택도 매력적이다. 공모전에 500명이 넘는 작가가 응모하는 까닭이다.
"공모전을 통해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등을 가리지만, 모두 'AG신진작가대상 선정작가'로 지원한다. 작품매입 상금과 함께 아티스트 라운지 이용권, AG갤러리의 다양한 기획과 전시에 참여 할 수 있는 멤버십을 부여한다. 또 작가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지원하고, 신진작가가 원하는 기성작가, 큐레이커, 비평가 등과의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로서의 성장을 돕는다. 시대에 함몰되거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작가 발굴이 목표다."
신진작가들 간 교류도 이뤄진다. 아티스트 라운지는 창작의 사랑방이다.
"일반 갤러리에는 작가들이 머물 곳이 없다. 전시 중이라도 인근 카페나 전시장 한 켠을 전전하게 된다.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게 아티스트 라운지다. 이곳은 작가들만의 공간이다. 작가들끼리 교류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작품과 전시를 구상하고 기획한다. 갤러리 디렉터로서 저도 작가들과 함께 한다. 그들의 생각이 현실로 옮겨지려면 부수적인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9년 제정된 '안국미술상'은 짧은 시간 속에서도 참신성과 공정성으로 이름이 높다. 공모 형식도 아니고 추천도 받지 않는다.
"안국미술상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는 한국 작가 중에 뽑는다. 특정 추첨방식을 통해 선정된 5명의 심사위원은 비엔날레 참여 작가에 대한 비공개 예비심사를 거쳐 각각 3인의 수상 후보자를 정하고, 최종 수상 후보자에 대해 토론방식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비엔날레가 2년마다 개최되기 때문에 격년 시상 방식을 택했다. 지금까지 김상돈(1회), 전현선(2회) 작가가 선정됐으며, 상금은 2000만원이다. 3회는 현재 심사위원 추첨을 마치고, 부산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참여 작가에 대한 예비심사를 진행 중이며, 내년 8월 열리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참여 작가 심사를 통해 2025년 수상자를 결정한다."
지속가능성에 무게 중심을 옮긴다. AG갤러리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다.
"무명 작가더라도 전시를 하는 순간 전세계에 자신의 작품을 내놓게 된다. 신진작가를 지원 사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신중을 기해야 하고 허투루 할 수도 없다. 일회성 사업은 안 하려고 한다.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지만 최소화하려고 한다.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가고 있다. AG갤러리도 신사옥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전략을 구상 중이다. 2025년을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원년으로 삼고 준비하고 있다. 작가에게 작업공간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사업 등 예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가치가 접점을 이루는 다양한 검토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