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標準·standard)은 무게·질량·범위·품질 등의 측정 원칙이나, 공정·분석 방법 등의 기술, 혹은 사회 문화적 관습이나 가치 등이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한 것을 의미한다. 길이는 미터(m), 질량은 킬로그램(kg), 품질은 ISO 9001 등등 국제사회가 합의에 따라 결정한 표준이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의과대학의 교육여건과 질적 수준의 '표준'을 설정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살피는 좋은 의사와 의학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의과학자를 제대로 양성하고 있는지를 평가해 인증해 왔다. 평가 결과를 국민에 공개해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육과정이 사회가 원하는 의료인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는 활동도 한다.
의학교육의 표준을 정하고, 이를 평가해 인증하는 것이 의평원이다.
의평원은 1980년대 11개 의대에 이어 1990년대 9개 의대가 잇따라 신설되자 의학교육계 스스로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자발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간담회와 공청회 등 여론을 수렴해서 자율적으로 인증평가 활동을 시작한 민간단체다. 1999년 신설의대 예비 평가를 시작으로 25년 동안 의과대학이 기본 의학교육을 할 수 있도록 견인차 구실을 해 왔다.
2014년에는 교육부의 고등교육 프로그램 평가인증기관으로 지정을 받았고, 2016년에는 세계의학교육연합회로부터 의과대학 평가인증기관으로 인정을 받았다. 의평원의 평가인증 활동이 '국제 표준'에 맞춰 진행하고 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 9월 고등교육 평가·인증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 내용은 교육부가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관인 의평원을 취소하더라도 기존 평가·인증 유효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저하돼 인정기관에서 불인증 하는 경우에도 1년 이상 보완기간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울러 평가인증 기준 등 중대한 변경 시 사전에 교육부 인정기관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근거를 신설, 인정기관심의위가 의평원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의평원을 무력화하고, 의학교육의 가치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의학교육이 부실하더라도 교육부가 마음대로 평가인증 표준과 기준을 조정해 인증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 보장과 보건위생 보호를 규정한 헌법과 법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국민참여입법센터에는 부실한 의학교육과 의사를 양성할 것이라는 우려와 반대 의견이 빗발치고 있다. 평소 의견의 10배가 넘는 1만 6천 건에 달한다.
의평원은 교육부의 시행령 압박에도 묵묵히 할 일을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건강과 의학 발전을 위한 길이자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세계의학교육연합회의 '국제 표준'에 맞춰 11월 30일까지 주요변화계획서를 접수, 내년 1월까지 서면 및 방문평가를 거쳐 2월 판정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사회적 합의 따위는 필요없다며 표준을 무너뜨리려는 교육부와 정권의 비전문성과 폭력성의 결과는 중증 및 응급 환자 치료 지연·필수의료 붕괴·지역 의료 위기·의학연구 후퇴 등 국민건강의 위기는 물론 이공계 위기와 교육 경쟁력의 악화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 후퇴로 나타날 것이다.
20%를 오르내리던 대통령 지지율이 19%대까지 곤두박질한 상황이다. 어디까지 가려는가?
노자 도덕경에 '지지지지(知止止止)'라는 말이 있다.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라는 의미다. 교육부와 정부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