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8∼20일 두 번째 '실패학회'를 연다. 올해 주제는 '거절'이다. 지난해 열린 첫 번째 실패학회 주제는 '망한 과제 자랑대회'였다.
KAIST 실패연구소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실패에 대한 기존 인식을 전환하고 학생들에게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고자 마련했다.
'실패의 과학' 강연, 지난해 큰 호응을 얻은 '망한 과제 자랑대회', 거절에 대한 보편적 경험, 실패와 관련된 아이템, 사진, 영상을 활용한 부스 전시 등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한 실패와 거절을 공유하며,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패의 과학적 가치를 발견하고 도전의 동력을 얻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조성호 KAIST 실패연구소장)
그렇다. 과학에서 실패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 과학에서 실패는 부끄럽지 않다.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다가도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까닭은 실패하면서 얻게 된 소중한 경험과 가치 때문이다.
정책도 실패한다. 그래서 정책 실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정책은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 언제부터 해야 하는지,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국민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등을 꼼꼼히 살피고, 몇 번이라도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 그래도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
의대정원 증원으로 축발된 의료 혼란이 벌어진지도 벌써 계절이 세 번 바뀐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대정원 증원에 긍정적이던 국민도, 한 목소리를 냈던 야당도 생각을 바꿨다. 의료혼란으로 생명과 건강 위기에 직면한 환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모두의 생각이 바뀌고 모든 게 달라졌는데도 오로지 한 사람만 그대로다.
국무회의에서는 연내 의료개혁의 가시적 성과를 재촉한다. 비선들의 국정 개입 의혹으로 어쩔 수 없이 차린 기자회견에서는 '2025년 의대 정원은 정부 뜻대로 됐다'고 못박는다.
의료현장의 애달픈 목소리나 의료혼란으로 초래된 수많은 부정적 현상은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개혁의 미몽속을 헤매면서 '돌을 맞겠다'고 언구럭부린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탄식이 이어진지 오래다.
개혁(改革)은 무엇일까. 한자를 풀면 가죽을 고치고 바꾸는 일이다. 예전에 가죽옷은 계급과 신분을 나타냈기 때문에 계급과 신분이 바뀔만치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의 대전환이라는 의미가 담긴다.
누군가의 희생과 열정으로 일궈온 선진적인 한국의료에 개혁의 올무를 씌우려면 그보다 더한 의료에 대한 이해와 깊이있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의료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가장 먼저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의료를 떼놓고 국민의 삶을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게 국민 뜻인가.
의대증원 정책은 실패했다. 누구도 성공을 얘기하지 않는다. 이를 성공이라 여긴다면 성공에 대한 "국어사전을 재정리해야" 한다.
과학에서 실패는 성공을 예비하지만,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한나 아렌트)
정말 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