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도 합리적인 의사결정 절차도 결여된 '졸속 증원'...의료사태 대혼란
의학교육 붕괴 우려에도 옹고집..."일 다 벌여놓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
[2024 의협신문 10대 뉴스]
'도량발호(跳梁跋扈)', 전국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으로, 의료사태를 촉발시킨 정부의 태도와도 딱 걸맞는 단어다. 난데없는 2000명 의대정원 증원 선언으로 대혼란을 초래한 정부는 이후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며 의료계를 탄압했다. 그 끝은 자멸이었으나, 무도한 권력의 폭주는 대한민국 의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2024년 의료계를 뉴스로 돌아본다. <편집자 주>
올 한해 의료계, 아니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혼란이 시작된 것은 지난 2월 6일이다.
이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서울정부청사에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를 가진 뒤, 2025년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더 뽑는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2035년까지 총 1만 명의 의사인력을 더 늘리겠다고 했다.
정부는 3개의 보고서를 의대증원의 근거로 제시하며, 이에 기초해 사회적협의체인 보정심에서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이 같이 뜻이 모였다고 했다.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의 저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보고서에는 "2000명 의대증원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며 "한번에 정원의 60% 이상을 증원하는 것은 문제가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보정심 위원들도 당일 회의에서 처음으로 정부의 2000명 증원 계획을 들었고, 일부 의원들은 비현실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했다. 심도있는 논의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당일 회의는 채 1시간도 진행되지 않았고, 조 장관은 "밖에 기자들이 기다린다"며 회의를 서둘러 마친 뒤 대규모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근거도, 합리적인 의사결정 절차도 결여된 졸속 증원 계획이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정부는 2000명 의대증원은 "객관적이고 과학적 근거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며 이를 밀어붙였다. 더 많은 의대정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각 대학들의 욕구를 악용해, 이들의 희망사항을 '의대 수요조사 결과'로 포장해 증원의 근거로 삼는 촌극도 벌였다.
의료계는 대규모 정원 증원이 현실화할 경우 의학교육이 파행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지만, 정부는 지난 5월 최종적으로 지금보다 1509명이 더 늘어난 4567명 규모로 내년도 의대정원을 확정하고 2025년 입시절차를 강행했다.
앞선 수시모집을 통해 이미 기존 정원(3058명)보다 많은 3118명의 의대 신입생이 선발된 상황. 의료정상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