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환자 안전문화-2

미국과 환자 안전문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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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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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1997년 재향군인병원 의료사고 보고 의무화

1999년 미국 최초 '전국환자안전센터' 창설

RCA통해 'Who'가 아닌 'What'·'Why' 규명

침묵·비난 문화에서 탈피…안전문화 창출

VA와 NCPS-과실보고 의무화

미국 VA(Department of Veterans Affair, 연방재향군인부처)에서는 환자의 유해사고나 안전과 관련된 케이스를 확인해서 보고하는 일이 환자안전을 위해 크게 공헌한다는 사실을 중요시하여 1997년 6월부터 산하 163개 VAH(재향군인병원) 의료제공자(의사와 병원 등)에게 의료사고 보고를 의무화시켰다.
그리고 1999년 11월 미국최초의 NCPS(National Center for Patient Safety, 전국환자안전센터)를 창설했다.

그 결과 1999년 12월에 발표한 19개월간의 집계에서 3,000건의 의료사고와 그중 사망자 700건이 보고됐으며, 사고내용은 약품사고, 의료기계 실수, 수혈사고, catheter 삽입사고, 다른 부위 수술 등이다.

19개월 기간에 의무적으로 보고된 VA의 3,000건은 자발적인 보고에만 의지하는 JCAHO(의료시설인정 합동심의회)의 5년간 사고(2000년 7월까지) 942건에 비해 월등히 높다. 여기에 대해 VA장관 Kitzer는 "노력하면 더욱 많은 과오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VA가 사고 많은 병원이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과오를 찾아내고 광범위한 문제점을 검증함으로써 안전제도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고 평했다.

2002년 10월 IOM(Institute of Medicine, 미국의료원)의 평가에 의하면, VAH 즉 재향군인 병원은 미국에서 최고 수준의 의료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재향군인을 위한 VA는 현재 163개 병원과 850개 외래진료소, 137개 요양원, 43개의 보호원, 그리고 73개의 홈 캐어 프로그램을 갖고있는 미국 최대규모의 의료체인이며, 2001년도에 420만 명의 진료실적이 있다.

2001년도 미국 민간병원에서 잘못 시술한 수술건수는 환자 2만 명에 1건인데 비해, VA는 3만 명에 1건으로 낮다.

전국 VA에서 NCPS 프로그램 착수(1999년 11월)한지 만 1년간(2000년 10월까지) 보고결과에 의하면, 사고 날 뻔했던 일(near miss 또는 close call)의 건수는 놀랍게도 무려 900배나 증가했다. 이 사실이 NCPS 보고에 대한 VA 스태프의 충실성을 말해 줌은 물론이다.

이 업적으로 NCPS는 2001년도 미국 연방정부의 가장 특권적인 '혁신고안상'에 빛났다. 그리고 VA의 NCPS프로그램교육에 미국병원협회를 비롯한 여러 전문학회와, 유럽 일본 싱가포르 등 많은 외국대표들이 참가했었다.

환자 안전이 국민보건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믿고있는 AHA(미국병원협회)는, 2002년 6월 의료사고를 확인하고 대처하는 모범문헌으로 VA의 NCPS 자료를 전국병원과 의료기관에 시달하였다. 머지않아 민간의료기관에서도 VA 방법이 적용되려는 전주곡일 것이다.

항공사고에서 배운다

다른 분야의 예를 들어, 항공계나 핵에너지공업 등 산업계에서는 처벌성 없는 의무적인 보고에서 비롯하여 종합적인 사고원인을 분석하고 장차 사고 재발방지의 이슈로 사용하고 있다. 민간항공에서는 항공사고로 인해 수 천명의 인명피해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안전문화'가 설정되어 있다.

즉 항공기는 출발 전 검진을 통해 결점을 발견해 시정하며, 제도적으로 검진을 위한 절차, 체크리스트, 시험, 중복 등의 과정이 설치되어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처벌함이 없이 자체보고를 의무화하고, 조사반은 근본 원인을 객관적으로 찾아내어, 재발을 막고 안전성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VA는 NCPS 창설과 동시에 책임자를 의사 겸 항공분야에 밝은 전직 항공사 닥터 Bagian을 임명했다. 의료안전문제 해결에 항공계의 안전문화를 도입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하겠다.

닥터 Bagian은 "의료계에서는 허다한 과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별일 없으리라고 기대하지만, 이러한 도전이 없는 전통을 시정해 나가야 한다. 의료계의 문화가 변해야만 하며, 과실이 있는 경우 긍정적으로 시인하는 풍토를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하여 항공계의 안전대책을 모방하여 처벌 없는 보고제도를 의무화하고 사고는 물론, 사고에 근접했던 near miss도 공개하도록 했다.

특히 허다하게 겪고있는데도, 노출되지 않고 세인이 모르고 지나던 near miss 보고증가(900배로 급증. 앞에서 언급)에 의한 광범한 정보수집 결과는 사고 취약분야의 적발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환자 안전제도 착수 첫 주의 near miss 보고성과는 당시 사용 중인 심박조율기(Pacemaker)의 불충분한 시동 장치였다. NCPS에서는 보고 받은 즉시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업자에게 통보하여 기계 개량을 한 결과 많은 심장환자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의료시술에 있어서도 항공계처럼 시술 전에 환자와 장치의 '체크리스트'나 시술자의 '기억각성지침'을 거치게 함으로써 복잡한 경우나 기억에 자신이 없을 때 올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체크리스트로 환자와 예정된 시술과 투약품목을 재확인해서, 사고로부터 환자생명을 구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접근법은 항공계 외에도 핵에너지시설과 여러 산업기관에서 성공적으로 이용되어왔다.
항공기 추락이나 원자력발전소 사고(1978년 미국 Three mile Island 사건이래 미국은 핵발전소를 더 이상 증설하지 않고, 안전유지에 진력하고 있다.

1986년 소련붕괴 전에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참변으로, 소련은 1954년 이래 모든 핵발전소에서 얻은 수익보다 3배나 더 큰 피해를 입었다)는 대형사고이므로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만, 매년 10만 명이나 사망하는 의료사고는 각 개개인의 죽음이기 때문에 특별히 세인의 이목을 끄는 언론의 축복(?)을 받은 호제〈1995년 플로리다주에서 과실로 인해 다른 쪽 다리를 절단한 소위 Willie King사건이 연일 미디어에 크게 보도되었다.

잇따라 같은 해 미국 최고의 Dana-Farber 암센터(하버드암센터의 전신)에서 항암제 과잉 투여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피해 사망자가 여기자였기 때문에 언론을 요란케 했다〉가 아니고서는 모르고 지나기 마련이다.

참고 삼아 외과사고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언론의 호제가 되는 사고 3종류는 ▲다른 환자에게 시술 ▲다른 쪽(부위)에 시술 ▲다른 종류의 시술을 하는 일이다. NCPS 의 새 프로그램은 이러한 과실을 예방하기 위해 3종류의 확인방법으로 5단계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의료사고는 의료인의 태만, 무관심, 악의, 탐욕 등이 원인이 아니며, 사고를 줄이는 방법으로 항공계 수준의 제도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일치된 견해다. 다시 말하자면 의료계의 사고 은폐 관습이 변해야 하고, 진솔한 사고와 긍정적 문화로 변해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항공계처럼 처벌을 동반하지 않은 보고의무가 전제돼야만 한다.

RCA로 안전문화 실현

의료과오 문제점을 시정하는 일은 고도의 직업정신과 직결된다. 우리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first, do no harm(무엇보다 환자에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문화 속에 살아왔다.

"의사는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do no harm의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선서를 지키기 위해서는 의사가 하는 일은 신과 같이 완벽해야 하고, 환자와 일반인들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의료문화다.

이러한 문화에 변동이 없는 한, 우리 의료인은 의료사고에서 비난일색의 갈등을 겪고있어야 만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비난에 대해 자기방어만 해왔던 의사와 병원은 드디어 그런 접근방법이 성공적이 못된다는 진실을 알게되었다.

참다운 국민보건을 위한다면 의료과오대책을 논의한 책(2000년 3월 IOM출판)의 이름과 부제처럼 To err is human이라는 사실을 수용함으로서 Building a safer health system(안전한 의료제도 육성)을 도입해야만 한다.

의사는 신이 아닌 인간이므로 당연히 과오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이고 그래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은폐하거나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근본 원인분석(Root Cause Analysis. RCA라 약칭한다)을 하여 의료시스템과정 자체의 결함부터 개선해 나가야만 된다는 취지에서 VA의 NCPS가 태어났다고 하겠다.

NCPS의 핵심을 이루는 RCA의 표적은 누가(Who) 했나? 가 아니라, 무슨(What)사고가 발생했나? 왜(Why) 발생했나? 재발방지를 위해 무엇을(What) 하나? 의 What와 Why를 찾아내는 일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이해함으로써 보다 나은 예방대책을 강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처럼 "실패는 성공의 기본"이며 "경험이 최고의 선생"이자 "가장 값비싼 가르침"인 것이다.

여기서 RCA는 예방을 기약하는 도구이며, '침묵의 문화' 또는 '비난의 문화'에서 탈피하고 안전문화(Culture of Safety)를 조성하려는 노력의 과정이기도 하다. RCA서는 사고만이 아니라 사고 날 뻔 했던 일도 연구조사대상이 된다.

환자는 의사측 과실을 알고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잘못된 의료과오행위를 환자에게 통보하는 제도는 오히려 도움 줄 수가 있다.

현재 미사추세츠의과대학연구팀은 사고 발생시 환자에 통지하고 후속조치를 취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통보 받은 환자 측이 무엇을 원하나? 그리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큼 도움이 되나?를 연구조사 중이다.

VA의 안전프로그램은 하찮은 법원소송건수나 금전목적의 야비한 소송을 제기하는 환자의 수나 또는 과오로 인한 사망자수를 전적으로 없애지는 못할망정, 오늘날처럼 너무나 범람하는 하고많은 사고와 소송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고 전망한다.

Lexington VA병원은 과거 6년간에 걸쳐, 사고발견 즉시 환자와 가족에게 통보하고 사고결과 사망했거나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피해보상을 위한 타협안을 가족에 제의하는 정책을 실천해 왔다. 그 결과 Lexington VA에서 의료과오소송에 소요된 비용이, 이런 제도가 없는 비교그룹(다른 36개 VA)에 비해 훨씬 적었다는 고무적인 통계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사고내용을 사실대로 통보하는 올바른 일을 하는 제도를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료계의 동향이며, VA가 이 과업성취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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