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 정형선
의료시장 개방과 한국의료공익-출자 의료법인 장점 부각 '돌파구'
최근 의료분야에서도 시장개방이라는 용어가 유행어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 중에는 의료시장개방이라는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시장개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이러한 논의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10년 전 투자시장 개방이 이루어지던 시점에 정부의 의료정책 담당자의 입장에 있었고, 지금은 학자로서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민들 사이에 의료시장개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엇갈리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본고에서는 '의료시장개방'의 의미와 국내 의료정책 내지 의료제도에서의 의미를 짚어봄으로써 한국의 의료가 대처할 방안을 강구해보고자 한다.
의료에 있어서 투자시장 개방은 1995년에 이루어졌다. 10년이 채 못 된 지금 우리는 의료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논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시장개방'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내용은 논자에 따라, 논의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르다. 의료시장 개방 이슈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외국면허 소지자의 국내 유입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외국병원의 국내 설립을 의료시장개방과 같은 용어로 보고 찬반을 논하는 경우도 있다.
WTO/DDA협상은 서비스 공급자는 이동하지 않으면서 서비스 자체가 국가간에 이동하는 것(Cross-border Supply), 소비자가 국가간에 이동하는 것(Consumption Abroad), 서비스 공급기관이 국가간에 이동하는 것(Commercial Presence), 서비스 공급자 자연인이 국가간에 이동하는 것(Movement of Natural Persons)의 네 가지 공급형태를 구분해서 진행되고 있다.
'의료서비스'시장의 개방은 '쌀'시장의 개방처럼 개방의 내용이 분명하고, 개방이 되는 순간 값싼 외국의 제품이 밀려들어오고, 그 결과 초래될 양상이 상대적으로 분명한 사항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의료분야의 각종 정책과 제도는 대부분 국내의 문제이다. 1차적으로는 국내 정책적 의미와 국내 의료제도에의 영향을 고려해서 판단하면 될 일이다.
의료부문에서 시장접근(MA)과 내국민대우(NT)가 제한된 대표적인 분야는 외국면허 소지자의 국내 의료행위와 관련된 부분이다. 중국·파키스탄·폴란드 등은 자국 인력의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이러한 의료인력의 '개방'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고 우리나라에게도 양허요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 부분은 아예 재고의 여지도 없는 국내 정책의 문제로 여기고 있다.
병원의 소유형태도 마찬가지로 국내정책적 성격이 크다. 우리와 일본의 병원은 의원에서 출발해서 병원과 종합병원으로 발전해 온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서구 국가에서 근대의 병원은 가난한 병자의 수용소로서 출발했다.
베버리지형(국가보건서비스형) 의료체제를 가진 국가의 경우 70 ~ 90%가 국공립이고 영리병원은 10 ~ 20%에 불과하며, 비스마르크형(사회보험형) 의료체제를 가진 국가의 경우 국공립은 50 ~ 70%이지만 공공규제의 대상인 비영리병원이 많기 때문에 영리병원은 오히려 베버리지형 국가보다 더 적다. 의료를 사용재(私用財)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한 미국도 영리병원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병원의 소유형태에 대한 정책은 국가의 역사적· 문화적 발전과정을 반영한 국내 정책의 문제로 대부분의 나라들이 인식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의료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필자는 OECD에 근무하면서 많은 나라의 의료정책 담당자나 학자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총체적 만족을 표시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의료제도는 어떠한 다른 제도(system)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구성이 되어 있다.
구성원이 다양할 뿐 아니라, 이들 구성원 간에는 협업과 분업이 요구됨에도 각 이익단체는 상반된 이해관계의 틀에서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본고의 짧은 지면에 이러한 다양한 내용을 균형있게 다룰 수는 없기에, 여기서는 다만 의료시장개방 논의의 핵심에 해당하는 영리법인병원에 관한 언급으로 우리의 의료의 방향에 관한 논의를 대신하고자 한다.
이미 필자가 여러 지면을 통해서 제안한 바와 같이 영리법인을 새로이 병원의 개설자로 인정하기 보다는 기존의 획일화된 의료법인을 양분하여 공공적인 성격을 강하게 갖는 '공익의료법인'과 출자자의 지분을 어느 정도 인정해서 출자하고자 하는 유인을 유지시키는 '출자의료법인'으로 나누어 양자의 장점을 살려나가는 안을 제시한다.
공익의료법인은 공익성을 강화하고, 출자의료법인은 기업성 내지 투자성을 인정하는 이러한 방안은 일본의 현행 의료법인제도가 지닌 장점을 살리면서, 한편으로 현행 일본 의료법인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제도의 복잡성을 완화시킨 것이다.
'공익의료법인'은 출자지분이 인정되지 않고 해산 시 잔여재산이 기부자에게 귀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현재의 의료법인과 같은 개념이다. 다만, 여러 편법을 통해 사실상의 이익 배당을 실현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여러 가지 제약조건을 통해서 공익성을 보다 강하게 요구한다. 대신 공공법인에 준하는 각종 세제혜택이 주어진다.
'출자의료법인'은 사단법인으로서 사원의 출자지분이 인정되고 해산시 잔여재산이 기부자에게 귀속하도록 한다. 이익배당은 허용되지 않지만, 당기 이익은 기본재산에 재투자되어 장기적으로 출자자의 지분에 귀속될 수 있다. 반면에, 출자지분이 인정되기 때문에 상속세와 증여세의 대상이 된다. 즉 기존의 의료법인보다 세금 면에서는 불리해진다.
이러한 의료법인제도의 재편을 통해 여러 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 반의료적 행위를 제외한 영리추구적 사업을 일정 부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영리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둘째, 지분있는 의료법인을 인정함으로써 영리법인의 병원개설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신규 자본의 유입효과를 기할 수 있다. 셋째, '공익의료법인'에 대한 세제혜택 등 각종 지원을 공익성 학교법인 내지 사회복지법인 수준으로 높이는 대신 이들 '공익의료법인'을 통해 병원의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