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교수(경산대/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
세계 각국의 의료보장제도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보험방식으로서의 의료보장은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여 보험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에 의하여 운영되는 것이다.다만 사회보장제도의 일반적 성질에 따라 저소득자와 고소득자는 보험료를 차등부담하나 급여는 동일하게 보장받는다. 그러나 보험료의 부과,징수 등 구체적 보험운영에 있어서는 가입자의 합의(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조세와 다르다.
조세에 의한 의료보장방식은 별도의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고 일반세금을 통해 거둔 정부의 재정에서 의료비를 부담한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보험료 부담능력과 국가재정 형편, 그리고 시행의 편의 등을 고려하여 1977년 7월 사업장 근로자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점차 확대하여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1979), 군 지역주민(1988)과 도시지역 자영자에까지 확대적용(1989)하게 되었다. 제도시행 12년만에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전국민 의료보험시대를 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의료보장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부터 사회보험 방식으로서의 의료보험제도를 채택하여 시행해 왔다. 우리의 경제여건과 사회구조상 조세를 통하여 국가의료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전체 의료 서비스의 90%를 민간의료에 의존하고 있는 의료공급 측면의 특성을 고려할 때 우리실정에 부합하는 것은 사회보험방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도 사회보험의 특성을 제외한다면 보험이란 면에서는 민간 사 보험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의료보험이 제대로 유지, 발전되자면 적정한 준비금을 유지하면서 수지균형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수지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정한 보험료를 합리적으로 부과하고, 부과된 보험료는 제때에 징수되며, 또 인상요인이 있을 때는 적기에 보험료를 인상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하게 의료비 상승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이 효율적으로 달성될 수 있도록 보험설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의료보험 성패의 관건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는 위의 요건을 감안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제에서 출발하여 의료보험통합전까지 20여 년 간 발전되어 왔다.
첫째, 보험가입자들(국민)의 의료소비수준과 소득파악정도 등을 감안할 때, 근로자 그룹, 공무원,교직원 등 특수직역 그룹, 농어촌지역 주민, 도시지역 주민으로 크게 구분, 관리한다. 이렇게 운영될 때 현실적으로 가입자의 의료소비와 보험료부담에 있어 상대적으로 형평을 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근로자 그룹과 특수직역 그룹은 위험분산이 가능한 범위와 사업장 단위를 원칙으로 하되 노,사가 보험운영에 직접 참여토록 한다.
셋째, 주민의 참여와 위험분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회연대의식이 강한 범위는 기초지방자치 단체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주민대표가 보험료 부과, 징수 등 보험운영에 직접 참여토록 한다.
넷째, 가입자 대표가 보험운영에 직접 참여케 함으로써 보험료 부과, 징수 등에 가입자의 합의를 용의케 하게 하여 보험료 징수와 적기에 보험료 인상을 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특히 중시한다.
다섯째, 민간의료기관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의료현실하에서는 자치운영 방식에 의할 때만이 비용부담과 의료소비가 직접 연계되기 때문에 의료비 억제와 남, 수진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
제도 시행 12년만에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기록을 세웠던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는 거창한 개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지 3년여 만에 보험재정이 파탄되는 등 총체적 위기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1977년 7월 제도시행 이래, 1995년까지는 140개의 직장 의료보험 조합과 1개의 의료보험공단, 237개의 시, 군, 구 의료보험조합이 독립채산의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또 경기 불황이나 천재지변 등 비상사태를 대비한 준비금도 적립하면서 수지균형을 이루어 왔다.
1995년 말 현재 적립금을 보면 직장의료보험이 2조 4,497억원, 지역의료보험이 9,688억원,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이 7,015억원에 달하고 있다.
또 1995년도 당기보험 재정수지도 직장의료보험이 3,449억원 지역의료보험이 43억원,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이 323억원으로 전부 흑자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6년도부터 보험재정 등 보험운영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었다. 1996년도 당기재정수지를 보면 직장의료보험은 여전히 흑자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흑자 규모가 1,491억원으로 예년에 비해 2배 이상 감소되고 있다.
지역의료보험은 제도시행이래 처음으로 1,442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도 처음으로 946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1997년부터 각종 보험지표는 더욱 악화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1996년 총선을 거치면서 정치권에서 의료보험통합을 위한 법안이 제출되고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는 의료보험통합법안이 성사되면서 직장, 지역, 공·교 보험재정상 적신호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1998년 10월 정부가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하고 2000년 7월 1일부터는 직장의료보험까지 통합했다.
지역의료보험은 통합 첫 해인 1998년도에 보험료를 20%정도 대폭 인상했음에도 1,572억원의 적자가 발생했으며, 1999년 3,283억원, 2000년에는 국고지원도 늘이고 보험료도 대폭(15%) 올렸는데도 2,989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20여년간 견실하게 운영되어 오던 직장의료보험마저 1997년 의료보험통합이 현실화되자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997년 2,275억원, 1998년3,874억원, 1999년 5,746억원, 2000년에는 7,101억원으로 적자규모도 매년 확대되고 있다.
2001년 들어 지역의료보험은 이미 누적적립금을 다 소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고지원 예산을 앞당겨 진료비를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직장의료보험은 그간 적립금으로 연명해 왔는데 4∼5월 중에는 그 적립금도 바닥나게 되어있다.
의료현실과 관행을 무시한 의약분업으로 국민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약물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약화사고를 줄여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의약분업을 실시한다고 정부는 끊임없이 홍보해 왔다. 또 의약분업은 선진국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좋은 제도이니 우리도 실시해야 한다면서 대다수 국민들이 원치 않는 상황에서 2000년 7월 의약분업 시행을 강행했다.
의료파업, 의보수가 불법인상, 보험료 인상, 국고지원 확대 등 그토록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감행한 의약분업이 본래의 목적대로 시행되고 있는가?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 벌써 1년이 다가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자료는 제시하지 않으면서 점차 의약분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국민을 우롱하는 말만 하고 있다.
2001년 1월 보건복지부 산하의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처방약의 투여량은 의약분업 전에 비해 15.1∼16.3%가 증가되었다. 처방약의 약제비용은 51.3∼60.4%가 늘었다. 항생제는 투여량은 18.8%∼22.9%, 약제비용은 34.8∼35.5%가 증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민족분열을 방불케 하는 의,약사간 극한대립이 초래되었을 뿐 만 아니라 국민에게 새로운 부담과 고통만 추가시켰다. 또 의약분업은 의료보험과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임에도 이를 무시한 채 시행함으로써 보험재정 파탄을 가속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의약분업을 충분한 준비도 없이 강행한 정부의 속사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근저에는 의료보험통합으로 인한 보험재정의 급격한 부실이 자리하고 있다.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소위 의료보험통합 신봉자들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의료보험을 통합하면 모든 의료문제는 다 해결 될 것처럼 선전해 왔다. 즉 의료보험을 통합하면,
첫째, 국민의 보험료 부담이 경감된다.
둘째, 국고지원이 필요 없어 국민의 부담도 줄어든다.
셋째, 가입자 간 보험료 부과가 형평성을 갖게 된다.
넷째, 보험급여 혜택은 오히려 커진다고 주장하고 선전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검증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법제화 작업을 했다. 김대중정부는 의료보험통합 추진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1998년 10월 의료보험통합을 실천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들의 주장이나 예측과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보험재정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급격히 부실화되었다.
그러자 의료보험통합의 명분을 살리면서 보험재정부실을 막기 위해서는 의사들로부터 약가마진을 박탈하여 약제비용을 절감하는 길이 첩경이라는데 공감했다.
의약품을 실제 구입가 대로 상환해 주는 '의약품 실거래 상환제도'와 약을 의사들의 손에서 떼어내는 효과를 가지는 '의약분업'을 강력히 추진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의약분업은 선진국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하여 국민건강을 보호한다는 명분까지 뚜렷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료보험통합 실패를 희석시키기에 그럴듯하게 좋았을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는 국민건강을 위해 실시했는데 준비가 다소 미흡해서 이렇게 되었노라고 변명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이 정부의 개혁 중의 개혁이라고 그토록 주장해 왔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해왔고 동조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요로와 정치권에는 물론 인부 시민단체의 핵심 등에 광범위하게 포진되어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의약분업) 정책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정부는 도덕성과 신뢰성을 잃었다. 2000년 8월 10일 보건복지부장관은 의약분업관련 보건의료 발전 대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즉, 정부는 8월 9일 오후 5시 국무총리 주재로 '의약분업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개최하여 재진료는 4,300원에서 5,300원으로, 원외처방료(1일분)는 1,736원에서 2,829원으로, 주사제 원외처방료는 2,001원에서 2,921원으로 대폭 인상키로 했다는 등이다. 지난 6월 23일 개최된 고위 당정회의에서 의료계와 약속한 내용을 구체화한다고도 했다.
대책의 핵심은 2000년 9월 1일부터 전체 의료보험 수가를 평균 6.5% 인상한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주재 관계장관대책회의(8월 9일)와 고위 당정회의(6월 23일)에서 결정된 방침이라는 것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미 의약분업에 대비해서 1999년 11월 9.0%, 2000년 4월 6.0%, 2000년 7월 9.2%를 인상한 직후였다. 통합의료보험법인 국민건강보험법 제 42조에 의하면 2000년 7월1일부터 요양급여비용(보험수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대통령령이 정하는 의약계 대표와 계약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동법 부칙 제11조에는 2000년 12월 31일까지는 종전의 법에 의해 고시된 보험수가는 동법 42조에 의거 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의약계 대표와 계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2000년 7월 1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 적용되는 보험수가도 계약으로 정할 사항이나 법시행(2000년 7월 1일)과 동시에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곤란하기 때문에 종전의 법 규정에 의해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한 보험수가를 계약체결된 것으로 본다는 경과규정이다.
따라서 종전의 규정에 의하여 고시된 보험수가는 2000년 12월 31일까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며, 보건복지부장관이 이를 임의로 인상시킬 수 없게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무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대책회의까지 해서 국민에게 중대한 부담이 되는 보험수가를 인상한 것은 명백한 법률위반행위일 뿐 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최소한 의료보험과 관련해서는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한 헌법재판소에서도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분명히 위헌이라고 했다. 다만 법이 정한 위헌결정종족수(6명)에 미달되어 제기한 헌법소원을 기각한다는 묘한 결정을 했을 뿐이다.
보험재정 파탄과 준비 안된 의약분업을 실시하게 한 의료보험통합의 실체를 밝힌다.그 동안 우리 나라 의료보험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일부 인사들이 의도적으로 이를 왜곡해 왔다.
즉 의료보험통합을 주장해 오던 사람들은 통합주의와 조합주의 논쟁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날조하였다. 통일을 연상케 하는 통합에다 사상논쟁이나 하는 것처럼 '주의'를 붙여 기존의 자치운영의 의료보험 방식의 주장을 수구적인 기득권 세력의 반개혁적 저항세력으로 매도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깊은 사정을 모르는 국민들과 일부단체들은 보험료를 낮추어주고 혜택은 많아진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이를 지지하고 정치권에서는 공약까지 했다. 의료보험에 있어 통합방식과 조합방식이란 그야말로 외형적으로 붙여진 보험자의 명칭과 이를 비판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에 불과하다.
즉 의료보험을 하나로 통합하여 운영하자는 것은 중앙집중통제방식인 반면, 지역별 사업장별로 조합을 구성하여 운영하자는 주장은 주민과 노,사의 자치방식이라는 것이 올바른 지칭이다.
그러면 의료보험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것이 어째서 문제인가?
전 국민을 통합하여 중앙에서 획일적으로 운영한다면 보험가입자(국민)들이 보험운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보험으로서 의료보험은 가입자의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임에도 의료보험 통합은 이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데에서 보험재정 파산 등 모든 결과가 연유되는 것이다.
즉, 현실적으로 전국민에게 적용될 공통된 보험료부과 기준을 마련할 수 없어 형평에 맞는 보험료를 부과할 수 없다. 따라서 가입자는 제때에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는다. 또 보험료는 전국단위의 국가적 문제로 확대되어 적기에 보험료를 인상할 수도 없다. 보험가입자나 보험자에 의한 자율적인 의료비 억제나 남 수진을 방지할 수 없다. 따라서 보험재정은 만성적 적자상태가 불가피하여 결국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통합법인 국민건강보험법이 제정되어 운영된 지 불과 4년만에 20여년 이상 견실하게 발전되어 온 의료보험 재정이 파산되는 등 총체적으로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다른 설명을 요하지 않는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의료보험통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료현실과 관행을 무시한 의약분업의 실시로 보험재정 파산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보험료가 경감된다는 주장이나 국고지원이 필요 없게된다는 주장은 허구였음이 이미 드러났다. 의료보험이 통합되면 가입자간 형평성 있는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보자.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하고 나서는 소득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없거나 있다해도 자료에 의한 연간 소득이 500만원 이하인 세대(전 세대의 90%이상)에 대하여는 실제 소득과는 아무 상관없이 성별과 연령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또 같은 소득이라 해도 자영자의 종합소득은 100%를 보험료 부과소득으로 평가하는데, 근로소득, 농지소득, 연금소득은 20%만 보험료를 부과소득으로 한다고 공단정관에 규정하고 있다. 의료보험을 통합해서 이렇게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능력에 따라 형평성 있는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인가?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솔직하게 고백하기 바란다.
이런 식으로 부과되는 보험료를 어느 누가 이해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보험료를 납부하겠는가? 어떻게 보험료가 제때에 징수될 수 있겠는가? 또 의료보험을 전국단위로 통합해 놓았으니 보험료 인상은 국가적 문제로 확대되고 정치적 영향권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됨으로써 적기에 보험료를 인상할 수도 없게 되었다.
또 중앙집중통제방식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마치 거대한 공룡조직이라고 해야만 할 것이다. 일선민원을 담당하는 읍,면,동 요원을 철수하여 민원인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오히려 상급관리직 수를 늘인 것이 국민들의 복지서비스를 담당하는 기관의 경영합리화인가?
핵심문제는 공단의 법적 성격을 재단법인으로 정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보험운영에 있어 비용부담자인 국민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보험운영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감시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린 셈이다.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나 협조를 기대할 수도 없고 운영의 주체의식도 사라졌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의료이용을 적정히 자제해주고, 보험료부담을 자발적으로 협조해 주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정부에서 시행하는 전국 단위의 중앙집중 통제방식의 의료보험이라면 구태여 공단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1만명의 인력을 두고 국민에게 따로 그 운영의 부담을 안길 필요가 없다. 국가가 조세방식으로 의료보장 재원을 확충하여 급여관리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즉 현재 건강보험 공단에서는 성별, 연령에 따른 평가소득과 재산, 자동차에 따라 보험료를 획일적으로 부과하고 있다. 이렇게 할 바에야 소득세, 재산세, 자동차세에 부가하여 의료보험 재정을 조달하고 병원에서 청구한 진료비를 심사하는 기구만 두는 것이 훨씬 형평성 있는 부담이 되고 관리비도 절약될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조치는 수입재원을 조세로 충당하는 마당에 의료기관을 민간에 맡겨놓고 그 비용을 다시 지불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가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렇게되면 결국은 의료기관 자체를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영국과 같은 국민의료서비스제도(National Health Service)로 가야한다는 결론에 봉착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의료현실, 사회구조, 국민의 의식 등을 감안할 때 조세방식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사회보험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사회보험 방식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면, 사회보험의 원리와 근본적 속성을 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집행하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소위 의료보험 통합 방식은 조세를 통한 공영방식도 아니고, 가입자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보험 방식도 아닌 기이한 형태이다. 이대로 간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국가적 의료체계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어 회복불능상태에 이를 것이다.
개혁의 명분을 고수하기 위하여 의료에 대한 급여통제를 강화하거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의료계를 비리집단으로 보는 듯한 비정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는 가져올는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사태의 심각성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의료보험, 의약분업을 근본원칙과 기본정신을 살릴 수 있도록, 우리 현실에 맞는 시스템을 재 설계하여 다시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 즉 지역의료보험은 지역사회 내 주민들간 상부상조정신을 살려 자율적 운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의식을 소생시켜 보험재정의 안정을 기하고 운영의 효율화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의료보험은 일종의 노동보험의 속성이 있으므로 노·사 공동체의식을 살릴 수 있고, 노·사 합의에 의한 자율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험 가입자 집단에 의료공급자 또한 그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므로 자율적 협조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 또한 의료문제에 있어서는 공급자나 수요자의 관계로 다소 입장을 달리한다 해도 여타 문제에 있어서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같은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이 총체적으로 붕괴국면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나타난 모든 문제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근본에 충실하면 실천 가능한 현실적 대안은 강구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