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농락된 Schiavo 케이스
■ 연방법원서 튜브제거 판결
1990년 26세 여자 Schiavo양은 심장마비로 식물인간이 되어 플로리다의 호스피스병동에서 15년간 튜브영양으로 연명해 왔다. S양 케이스는 그동안 회색지대에 머물러 왔던 연명의료문제가 이슈화되어 사회의 물의를 일으켰으며, 이번에 플로리다 항소재판소의 최종판결에 따라 드디어 2005년 3월 18일 튜브가 제거되었다.
그런데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워싱턴 정계에 비화되었다. 연방 상하원과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3월 22일 연방항소법원에서 튜브 재삽입이 거절되었고, 연방대법원에서도 같은 결과가 예측된다.
S양의 의식불명상태는 식물인간(Persistent Vegetative Status, PVS)과 '최소한 의식'의 중간지점에 있으나, 다수의 전문인들은 몇 년간 의식회복이 없는 상태이므로 PVS로 간주하고 있다. 연명의료중단을 요구하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복이라는 기적을 바라고 있는 S양의 부모는 보수 크리스천 단체를 동원시키고, 플로리다의회와 부시 주지사(대통령 동생)를 움직여 튜브제거가 보류된 채 튜브영양으로 15년간 생존하고 있는 식물인간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2001년 4월과 2003년 10월의 2차에 걸쳐 회복가망이 없다는 전문의의 증언을 참고한 플로리다지방법원은 일시적(각각 2일과 6일간)이나마 튜브제거를 명령했으나, 그때마다 플로리다 의회는 긴급법안을 통과시켜 주지사로 하여금 튜브제거를 보류시켜 왔다.
3월 18일 '튜브제거'라는 플로리다법원의 최종 판결과 주의회를 통한 요구관철이 한계에 도달하자, 연방법원의 개입을 가능케 한 법안을 일요일 야밤중에 소집된 연방 상원과 하원에서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공화당의원은 물론, 인도주의라는 미명에 거역하기를 주저하는 많은 민주당의원이 동조한 결과다. 지방출장에서 급히 귀경한 부시는 19일 월요일 새벽 1시 11분에 서명을 완료했으며, S양 부모는 즉시 연방법원에 튜브영양을 재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연방지방법원은 이를 거절했다. 튜브가 제거된 S양의 생명은 길어야 2주일이고, 그사이 구명할 시일이 촉박하므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의 여당간부는 회합하여 S양 케이스를 연방법원에 제소하게끔 긴급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일요일 오후에 의회를 소집했으며, 지방에 나간 부시대통령은 법안통과 즉시 서명하려고 예정을 뒤바꾸어 급히 귀경하는 등 일대소동을 부렸던 것이다.
S양을 살리자는 이슈는 의학과 도덕적 영역을 넘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어 워싱턴 연방정계로 비화하기에 이르렀으니,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15년간 계속된 식물인간의 연명여부를 두고 전문인의 증언도 무시한 채 S양이 가족과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들어갔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생전유언(Living Will·Advance Directive)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복이라는 기적을 기대하는 광신자의 주장이 먹혀들어간 셈이다. 생전유언(Living Will)은 종말의료에 대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적은 서류를 말하며, 의료지시(Advance Directive)는 생전유언과 더불어 종말의료에서 법정대행인을 지명한 서류를 일컫는다. 현재 미국성인의 약 75%는 생전유언이 없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년(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S양 케이스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이 없는 생명도 보호해야한다는 공화당의 기독교 보수주의파와 과학적인 전문가 의견을 편드는 민주당 현실파 사이의 정치이슈가 되어버렸다.
뉴욕타임스는 논설에서 "15년간이나 병상에서 연명하고 있는 식물인간 S양에 대한 튜브제거문제를 놓고 시급한 국정을 논의해야 하는 정객들이 명분 없는 투쟁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플로리다법정에서 철저한 연구와 법적검토를 거친바 있는 S양 케이스를 공화당이 '종말의료와 생명존중'이라는 의제로 확대 해석한 것은 '유치한 연극과 같은 노력'(theatrical effort)이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연방의회의 무모하고 주제넘은 입법권 행사와 '죽을 권리'에 관해 정립되어 있는 주와 연방정부의 '판례'를 유린하려는 시도는 바로 경천동지할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월요일 새벽 1시 대통령이 서명한 것에 대해서도 'A Blow to the Rule of Law'('법치에 뒤통수치다')라는 제목으로 "의회와 대통령은 우리 선구자가 닦아 놓은 민주주의 바탕에 크나 큰 손상을 입혔다. 이번 법안은 주정부의 자율성과 위신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다"고 논평했다. 생존유언이 없을 경우 '연명의료를 PVS를 비롯한 모든 말기환자에게 적용하느냐,또는 회복가능성이 있는 케이스에만 적용하나느냐'의 결정은 대개의 주에서는 남편 등 근친자의 의견에 따르고 있다. S양처럼 문제가 된 케이스에 대한 최종 결정권한은 법원에 있으며, 선량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방과 주의회의 선량들이 할 일은 입법이며, 일단 작성된 법안에 문제가 생기는 특수한 경우의 해결은 법원의 소관이다. 위급한 국가대사가 아닌데도, 일개 개인에 적용할 법안통과를 위해 한밤중에 상하원과 국가원수가 수다를 떠는 희극은 가관이었다.
감성적인 대중여론과 호흡을 같이하는 일은 정치가의 속성이기도 하나, 플로리다와 연방법관은 전문의의 증언을 존중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정을 내렸음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드물게 곡학아세하는 예외적인 법관도 있지만, 정부와 국회가 만든 엉터리 '재외교포법안'과 '수도이전법안'에 철퇴를 가한 헌법재판소의 존재는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