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희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
오늘날 세계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 그리고 국가간 교역장벽의 완화 또는 철폐로 정부나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경제생활마저도 나라 안팎의 다양한 변화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고 있다.
40여년간 성공적으로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이룩해왔고 향후에도 세계시장과 함께 경제발전을 이룩해나가고자 하는 한국경제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화(Globalization)의 길을 가고 있는 개방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제고시켜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세계경제의 통합화는 과거 상품위주의 교역증대중심에서 자본의 교류와 직접투자의 확대 그리고 노동과 서비스 이동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국경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종래 국제교역의 수혜국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큰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상품시장을 개방하는 한편 금융 및 서비스시장 개방에 대한 준비는 수세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충분한 준비없는 자본시장개방은 1997년말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으며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마찬가지로 우루과이라운드(UR)와 도하개발아젠다(DDA) 그리고 칸툰각료회의에 이르기까지 진전되고 있는 서비스시장개방을 위한 국제적 노력은 우리에게는 언젠가 또 하나의 시련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교육과 함께 의료를 산업으로 보지 않는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 경쟁력있는 산업으로서 이들 부문에 대한 공급능력을 키워나가지 않는다면 그 시련은 한국경제에 다시 한번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커다란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유럽연합이 병원서비스, 건강보험, 의료관련 전문서비스를 개방하고 미국과 일본이 병원서비스와 건강보험서비스를 개방키로 하는 등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의료시장 개방은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다. 사실 보건의료기관시설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허용된 지 이미 10년이 경과했다는 점에서 국내의료시장개방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즉, 외자도입법 및 외국인 투자인가지침에 투자제한 업종으로 규정했던 관련 조항이 폐지된 것이 1995년 1월이었고 현행 외국인투자촉진법에서 외국인투자가가 대외송금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어 제도적으로는 외국인의 국내의료시장에 대한 진출은 가능하다.
다만 외국에서와는 달리 의료인이 아닌 경우,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음을 의료법이 규정하고 있어 영리법인에 의한 국내의료시장 진출이 억제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제주도에 외국영리법인에 의한 의료기관설립을 허용하는 법안이 의결되었고 얼마전에는 인천경제특구에 외국의 대형병원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보도되기도 했다.
또한 재외동포특례법과 같이 교포의사 및 의료보조인력의 국내시장진입이 가능하며 부동산 구입자격 및 과실송금제한 등의 규제에서 자유롭게 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 의료인력의 유입,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기관 설립 등 실질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국내의료시장 개방이 예상보다 빠르게 개방의 수순을 밟을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시장의 개방이 선택의 문제를 떠나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면 개방에 따른 피해를 줄이고 과거 미비했던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효과적인 제도적 개선에 하루빨리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먼저 의료인력의 자격규제와 관련하여 의학교육의 내용과 기간뿐 아니라 한국어 이해력과 구사력에 대한 시험을 통과토록 하는 등 국가간 상호인정과정에서 협상의 여지를 가지는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진입을 어느 정도 통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WTO 회원국으로서 우리나라가 외국법인에 대한 과실송금 규제를 고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이며 일본의 경우, 영리법인의 병원설립을 허용하고 있다.
이를 따를 경우, 이들 외국법인들의 진출은 더욱 용이해질 것이므로 이에 대비해 의료이용의 형평성 및 접근성 제고, 중소병원의 전문화, 1차의료의 강화, 공공의료시설의 확충 등의 보완책에 보다 주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외국의료기관의 국내진출에 따라 경쟁이 격화되고 경영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이는 개방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이라는 점에서 외국법인의 진출에 앞서 경쟁여건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면역력을 강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예컨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영리법인에 의한 병원설립 자유화를 앞당기거나 병원경영에 있어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하고 병원의 비용절감유인이 적은 비용후불제에 안주하기 보다는 진단명 기준 포괄수가제도와 같은 대안적 방안을 조심스럽게 도입하거나 전략적 제휴방식에 의한 의료기관간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의 노력이 의료시장 내에서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합의기반을 확충하고 제도적 개선을 적극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