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료비 급등하자 의대정원 감축 나서
의사수 늘려도 의료취약지역 해결은 요원
세계가 의사수를 줄이기 위한 '다이어트'에 한창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인식하에 전세계는 의과대학 증설과 의대 입학정원 증가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했다. 인구에 비해 의사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19일 대한의사협회가 펴낸 '주요국가의 의사수급현황과 시사점(연구자 신성철 의협 기획정책국장)' 연구보고서에는 의사인력의 과잉과 국민의료비 증가로 인한 선진국들의 고민들과 해결 방안이 담겨 있다.
◆의료비 증대가 원인=과거에는 의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믿었다. 인구 대비 의사수가 많으면 복지국가로 통하던 당시 각국은 의사수를 늘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의사수가 늘면 의료비가 감소하고 의사들이 농어촌이나 벽오지 등 의료취약지역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이론적인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실증적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오히려 국민의료비 앙등이라는 역효과만 남았다.
미국의 경우 1960~1970년대 의사공급 증가를 추진했다. 그 결과 미국 연간 의과대학 졸업자수는 1971년 8974명에서 1986년 16117명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과다한 의사인력의 배출은 의료수요 창출을 통한 국민의료비 지출 증가를 가져온다는 이론이 대두됐다.
실제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가운데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1960년 5.2%에서 1970년 7.4%, 1980년 9.2%, 1990년 12.1%, 2000년 13.1%, 2003년에는 15.0%까지 늘었다.
◆주요국 의사인력 현황=미국에서는 의대 입학정원을 감축하고, 1970년대에 도입된 의사공급 촉진대책을 폐지 또는 축소했다. 외국인 의사 유입도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85년부터 의대 정원 감원에 착수했다. 그 결과 1993년에는 입학정원이 7.7% 줄어든 7725명이 됐다. 또 1995년부터 10년에 걸쳐 10%를 추가로 줄이기로 하고, 현재 이를 진행 중이다.
캐나다는 1990년 이후 의대 입학정원을 10% 감축했으며, 독일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의과대학의 증설을 억제하고 있다. 영국도 의대 입학정원을 1970년 정부가 설정한 4080명의 목표 이내에서 억제하고 있다.
◆"한국도 의사 과잉 심각해질 것"=한국의 문제점은 의사수의 증가세가 매우 가파르다는 데 있다. 지난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우리나라 의사수의 증가율은 무려 126%에 달한다. 미국은 29%, 영국 57%, 일본 27%, 독일 10% 증가에 그쳤다. 이렇듯 의사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90년대에 의대와 의대 입학정원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신성철 기획정책국장은 "우리나라 국민의료비는 2003년 기준으로 GDP의 5.6% 수준이지만, 1990년 4.5%, 2000년 4.7%에 비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최근 의사공급 증가추세로 볼 때 의사과잉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보건의료 문제는 단지 병원 증설이나 의사를 증원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수급추계결과에 근거해 현재 가지고 있는 시설과 인력을 국민의 경제·사회적 지위와 여건에 맞게 적절한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시스템을 개발하고 재설계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