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적 사고와 불일치
얼마전 한방 CT 항소심에서 서울고법은 한의사의 불법 CT 사용에 대해 "CT는 한방진료 영역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2년여 끌어오던 사건이 종결됐다.
이 판결은 "의사나 한의사나 질병의 진단에 오감(五感)을 사용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어처구니없는 원심을 이성적인 판결로 되돌려 놓았지만, 이 사건으로 우리 영상의학회를 포함한 의료계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재정적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한방 측은 이 판결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11조 평등권,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의료법 및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에 한의사도 의료기사를 지도감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냈다. 점입가경이며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의학은 세균 등 질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항생제·예방주사·수술·암 치료제 등의 치료방법과 CT·초음파·MRI 등 물리학적·인체공학적 영상진단 장비와 조직 및 면역화학적 검사 등의 병리학적 검사를 이용하여 인류를 질병에서 획기적으로 구해 온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의료다. 이와 동시에 그 근원이 과학에 있어 증거를 바탕으로 하는 객관성을 띠고 있으며 논문과 서적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학문이다.
이에 반해 한의학체계의 근본은 자연과 인간의 상관관계를 뒷받침하는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에 두며 모든 현상을 기(氣)의 운동으로 일원적으로 이해하려는 '기의 사상'이다. 질병을 다루는데 있어서 기·혈·수로 나누어 증상을 진단하며 그 결과 치료약이 결정된다.
진찰은 망진(望診)·문진(問診)·문진(聞診)·절진(切診)의 4가지로 그 중 절진은 맥을 손가락으로 짚어보고 판단하는 맥진(脈診), 복부를 촉진(觸診)하는 복진(腹診)으로 나누며 한의학의 원리를 체계화한 것이 음양오행설로 인간의 질병이란 체내 음과 양의 부조화와 오행의 괴리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또 진찰이란 바로 질병의 증후들을 관찰하여 음양 또는 오행의 부조화상태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한의학적 망진은 입·혀·콧구멍·눈의 상태 등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러한 망진을 통해 한의학 이론을 이용, 환자 상태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현대의학의 진단에 해당된다. 이 패턴은 현대 의학적으로는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음양오행 귀류표에 따른 내부 장기와의 연관성에 근거한다. 즉 심장의 구멍이 혀에 열려 있다는 음양오행적 오행귀류에 따라 혀의 미각기능에 이상이 있다면 심장과 비장에 이상이 생겼다고 추론한다. 또한 패턴에 따라 같은 병도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고, 다른 병도 같은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진단은 의학…'비논리적
이러한 패턴화된 지식은 풍수·점복·천문 등 고대의 음양오행적 동양철학사상을 근간으로 한 것으로, 현대과학에 기초한 현대의학적 사고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질병을 놓고도 진단에 대한 접근방법과 치료의 과정이 판이하게 다른 의학과 한의학인데 한방에서 현대의학의 핵심인 의료장비를 환자에게 사용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매우 위험한 시도인 것이다.
'진단은 의학, 치료는 한의학'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도 성립되지 않으며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대법원 판례에도 한방의료는 "옛 선조로부터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 예방이나 치료행위"로 규정했다.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면허제도는 자격관리를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부작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해당분야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있다. 해당분야의 교과과정 포함 여부는 개인이 어느 분야든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고자 하는 선택의 연장에 있을 뿐 국가가 정한 일정한 과정과 자격을 부정하려는 의도로 사용될 수 없다.
의과대학에서 치과 이론교육을 받고 있지만 치과의사가 될 수 없고, 변호사가 회계 강의를 받았다고 해서 회계사가 될 수 없다. 한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과 이론 교육을 받았다고, 영상의학과의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의학과 한의학은 이질성을 가진 별개의 두 학문이며 그 결과 각각의 면허자격제도시스템을 가진 것이다.
한방효과 등 주관적 판단
의료기사법은 의료기사제도를 정의하면서 의사의 지도하에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한정된 범위를 둔 취지는 의사와 치과의사가 법으로 정한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의료기사는 의학의 범주 중 제한적인 업무범위를 정하고 일정한 수련을 거쳐 자격을 얻은 자로 하여금 의사·치과의사의 지도하에 의료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의료기사의 업무영역은 의학의 영역이며, 태생부터 의학과 구분되는 한의학의 영역에서는 그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의료기사법에서 한의사의 지도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입법과정의 착오가 아니라 의학과 한의학 이원체계속에서 의학의 일부분으로서 의료기사제도가 만들어진 때문이다.
의학과 한의학의 이원체계를 인정하는 현행법상 한의사가 의료기사를 지도감독 한다는 것은 한의사는 의학도 할 수 있다는 모순에 빠지게 되며, 한의사가 의료기사를 지도감독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의사가 의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렇게 여러 면에 의사와 한의사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평가하는 방법과 원칙도 다른데, 증거와 재현성 및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의료기기의 사용은 물론, 의료기사의 지도감독을 한의사가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것이 허용되었을 때 국민에게 가해지는 크나큰 위해와 혼란, 전문성 부재로 인한 의료의 질 저하, 국제적 위상 실추, 막대한 의료비 상승 등 부작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의사는 모든 한방진료의 효과 및 옳고 그름을 주관적인 한의학에 근거하므로 소위 의학에서 말하는 의료장비의 '부작용' '남용' 및 '오용'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