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질환, 소아외과, 화상치료, 각종 종양수술 등 거의 모든 외과 영역의 수술을 집도, 수많은 사람을 살려낸 최 교수도 흘러가는 세월을 막지는 못한 것 같다.
최 교수는 의사면서 학자이자 훌륭한 교육자였고 10여년간 병원장을 지낸 행정가였다. 1984년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혈관외과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한맥관외과학회를 창립, 현재 보편적인 치료의학으로 자리잡는데 지대한 기여를 했고, 1986년 춘천성심병원을 시작으로 강남성심병원, 한강성심병원 등 한림대의료원 산하 주요 병원을 두로 돌며 병원장을 지냈다. 병원장을 맡으면서도 학문 연구에 열의를 잃지 않아 학술대회 때마다 연제를 내 놓았다. 1963년 이후 매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발표한 논문수는 헤아리기 조차 힘들 정도다. 1996년 제2차 아시아 혈관외과학회 때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회의를 성공리에 마치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한번 들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신통력을 가진 뛰어난 교육자였다. 제자인 울산의대 이영주 교수는 "교과서 어느 한 부분의 사소한 지식이라 하더라도 풍부한 임상경험과 정확한 표현력으로 자칫 무미건조할 수 있는 지식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언제나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이 최 교수를 평가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구동성으로 '건강, 근면, 끈기, 추진력, 건전한 윤리관, 재미난 말재주, 그리고 엄청난 주량'을 한결같이 꼽는다.
특히 근면한 생활태도는 남들과 크게 달라, 일반외과 레지던트 시절에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했고 병상일지·수술기록이 밀리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한다. 자기가 맡은 대수술 환자가 있을 때 밤새우고 지키는 일은 거의 습관적이었다고 당시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애주가인 최교수는 잔을 사양하거나 술자리에서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흐트러진 모습을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고 아무리 밤 늦도록 술을 마셨어도 다음날 병원에서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최 교수의 정열과 왕성한 활동의 밑천은 건강한 신체에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10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수술을 거뜬히 해낸다. 얼마전 최교수가 수술을 받았다는 급보를 전해들은 병원 스탭들이 서둘러 문안을 갔을 때 너무나 태연하고 당당한 모습에 병문안 온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했다는 일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 교수는 환자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는 의사다 1년 후배인 늘푸른 외과의원 심영보 원장이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베트남 이동외과병원에 근무할 당시 최교수가 인계해 준 여자 환자가 있었는데, 최 교수가 너무도 친절하고 자상하게 돌봐 줬다며 고마워 어쩔줄 몰라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몇해전, 심 원장이 베트남에 관광을 갔을 때 우연히 그 환자를 다시 만나게 됐는데, 제일 먼저 최 교수의 안부를 물으며 아직도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성심 성의껏 대하면 환자는 평생을 두고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최 교수의 환자 사랑 정신은 지난 의료대란 때도 여지없이 보여줬다. 의료계 총파업을 앞둔 병원협회 회의석상에서 최 교수는 파업만은 안된다고 단호하게 외쳤다.
"그 당시에는 의료계로서 별다른 대응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업을 택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의사는 환자 곁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괴로움을 줘서 어떤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최 교수는 말을 참 잘하는 사람이다. 말을 잘 한다는것이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서 잘 꾸며낸다는 것이 아니라, 논리가 정연하고 내용 전달이 분명하며 설득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과묵하다가도 일단 말문이 열리면 다양한 화제로 끝없이 말을 이어나가 분위기를 이끌고, 이왕이면 긍정적인 시각에서 얘기를 하며 주변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법이 거의 없지만, 어쩌다 한번 하게되면 주로 칭찬을 하는 그런 사람이다.
해야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최교수의 성품은 미국 신시내티 굿사마리탄 병원에서 수련과정에 있을 당시 일어난 한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의학협회지 독자 투고란에 한 미국의사가 "한국 이민자들은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있고 사회봉사를 등한시하는 돈벌레"라고 비난하자 최 교수는 곧장 반박문을 보내 "그런 논리라면 미국인들은 약탈한 미국 대륙에서 물러나고 원주민 인디언들에게 모든것을 되돌려 줘라"고 반격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 교수는 교단을 떠나면서 한가지 고민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한다. 외과분야가 이른바 의료의 3D업종 취급을 받으며 비인기 분야로 전락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외과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못하는 풍토 때문입니다. 환자가 잘못되면 무조건 의사를 가해자로 몰아 세우는데 어떻게 위험한 수술을 소신껏 할 수 있겠습니까. 젊은 의사들이 외과에 매력을 느끼고 지원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정말 시급합니다."
정년퇴임 후 현재 수도육군병원 시절부터 친분을 다져온 김광태 이사장이 운영하는 대림성모병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최교수는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한 언제나 환자 곁을 지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교수는 서울대 법대 출신인 아내 고방자 여사와 서울대병원 전공의로 근무중인 장남을 포함해 2남1녀를 두고 있다.
저작권자 © 의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