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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28>

[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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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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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장벽에 금을 낸 밴 클라이번(1934 ~ )<2부>

▲ 이종구(이종구 심장클리닉원장·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클라이번이 모스크바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가 어린나이에 크렘린과 성바실사원의 그림을 보았을 때였다. 그 아이가 어머니에게 성바실성당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고 하며 어머니는 그에게 약속했고 20여년 후에 이 두 사람은 모스크바에 나타났다.

정치적 억압과 의심에 싸여 살던 러시아 시민들은 장신의 미남 클라이번의 활짝 웃는 친근한 모습에 완전히 반해 버렸으며 클라이번은 타고난 시민외교단의 소질을 유감없이 나타냈다. 그는 러시아 언론에게 러시아 사람들은 매우 진지하며 텍사스 사람과도 같다고 칭찬하면서 텍사스인은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알려주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귀국하자 필하모니와는 물론 전 미국에서 유명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하였다. 그는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에 시카고 심포니와 아주 소액을 받고 연주할 계약을 한 바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 그 계약을 이행하였다하여 미국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근 20년간 많은 연주를 하고 RCA와 음반도 만들었다. 그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클래식 음악으로는 처음으로 100만장이 팔렸으며 결국 300만장을 돌파하였다.

휴식과 재충전의 필요성을 느낀 클라이번은 1978년부터 9년간의 긴 안식년으로 그의 이 긴 인터미션은 1987년에 막을 내렸다. 냉전 종식의 필요성을 느낀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을 방문할 때 클라이번이 연주를 하고 난 후 그는 "나는 러시아 사람을 사랑 합니다. 러시아의 예술을 사랑합니다" 라고 선언하고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포옹하자 다음날 긴장감에 싸였던 고르바초프의 태도는 한결 부드러워 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밴 클라이번의 피아노 연주가 러시아와 미국간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된듯하다.

그 후 1989년 클라이번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열렸던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다시 연주를 하고 가는 곳마다 러시아 시민 특히 젊은 여성들은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귀국한 후 그는 18개의 미국 도시에서 거의 모든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다. 특히 시카고의 그랜드파크에서는 미국 태생의 스래트킨의 지휘로 야외공연이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35만 명이 참가하였다. 미국 시골출신인 클라이번이 전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가 사랑하는 피아니스트가 된 것은 물론 그의 뛰어난 기술도 있었지만 그의 인간성과 스타의 기질(star quality)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명성에 도취되지 않고 겸손하며 팬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따뜻한 인간이었으며 타고난스타 기질의 소유자였다. 진정한 스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는(A Star is borne, not made) 외국의 격언이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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