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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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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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탄압은 쇼스타코비치를
위대한 작곡가로 만들었나? <3부>

▲ 이종구(이종구 심장클리닉원장·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이 교향곡은 영웅적인 러시아인의 저항과 궁극적인 승리를 상징한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후일에 쇼스타코비치는 회고록에서 "이 교향곡은 레닌그라드의 고난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스탈린이 거의 파괴한 레닌그라드를 히틀러가 완전히 파괴하려다 실패한 이야기이다."라고 썼다.

1948년 그와 소련의 많은 예술문화인들이 다시 한 번 반사회주의 적이라는 이유로 위협적인 비판을 받았다.  

그 후 1949년에는 서방과의 관계개선의 노력으로 쇼스타코비치를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보내는 등 유화정책을 펼쳤으며, 1951년에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을 위대한 정원사로 묘사하는 칸타타 "숲의 노래"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것은 스탈린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참지 못할 고통을 피하고 음악을 계속하기 위한 생존수단이었을 것이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은 쇼스타코비치의 정치적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1960년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으며 그 후 그의 교향곡 4번이 공연되었다. 후일 그는 아들과 처에게 협박을 받아 입당하였다고 자백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골초이자 술꾼이었다. 1955년에는 소아마비로 다리 한쪽이 불편해졌고 1958년 그는 중풍 증세를 보이고 오른팔이 불편해지자 피아노 연주는 포기하였으며 1975년에 폐암으로 타계하였다.  

그는 교향곡 15개, 관악 4중주 15개 외에도 총 147개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가 사망한 1975년에도 6개의 작품을 쓰는 등 최후의 순간까지 작곡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러시아의 유명한 지휘자 발기에프는 1997년에 제작된 "스탈린에 저항하는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 against Stalin)"이라는 기록영화에서 쇼스타코비치를 잔인한 독재자 스탈린에 용감하게 저항한 작곡가로 규정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스탈린의 끊임없는 탄압이 오히려 쇼스타코비치를 더 훌륭한 작곡가로 만들었다고 결론짓고 있다.

아마도 스탈린의 탄압이 없었다면 쇼스타코비치는 위대한 작곡가의 한사람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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