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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성'의 의미

'민감성'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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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2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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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은경(광주·중앙소아청소년과의원)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심드렁하게 스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가슴에 박힌 것. 사랑을 잃고 거리를 헤매던 날 우연히 들려 온 음악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본 그림일 수도 있다. 배경인물인 줄만 알다가 알고보니 마음이 잘 통해서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된 사람은 또 어떤가. 그런데 지금 나는 자주 보았던 흔한 단어 하나에 꽂혀있는 중이다.

나는 진찰실에서 아가들을 어르는 데 관심이 많다. 기침하는 아가들의 호기시 청진을 정확하게 해보겠다는 욕심에서 시작했지만, 아가들이 일단 울지 않고 진찰을 받으면 다음에는 병원을 훨씬 덜 무서워하게 되는 것도 좋았다. 관심의 결과이겠지만 이 방면에 재주도 제법 있다.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어떤 '울리지 않기 기법'을 사용할 지 결정하려면 창의적인 지능이 필요하기도 하고, 영유아 발달과정을 완전히 체득하고 있어야만 하니 상당히 전문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법의 성공에 제일 필수적인 것은 어떤 지식보다 아이의 순간적인 반응들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민감성이다. 나는 아이의 반응결과에 따라 기법의 강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살짝 변화를 주기도 한다.

엄마 품속에서도 뭔가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며 진료실로 들어오는 녀석. 저 녀석을 울리지 않고 진찰하려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도록 소리나는 뭔가가 필요하겠는데. 에라! 설압자통이라도 흔들어보자. 내 설압자통 작전의 성공을 눈여겨보던 우리 김 간호사. 소리지르고 발버둥치는 아이한테 딴엔 잘한다고 얼른 나보다 먼저 설압자통을 집어 흔들어댄다. 웬걸. 무정한 녀석은 죽어라고 계속 울어댈 뿐이다. 나는 잠깐이라도 녀석의 울음 끝이 순해지는 시점을 포착한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는 표정과 아주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문 밖을 가리키면서 "어머머!저기 멍멍이가 왔네?" 녀석이 잠시 속아서 강아지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순간 아이 가슴과 등의 청진까지 능숙하게 끝낸다. 내 작전을 흉내내 보려다가 보기 좋게 퇴짜 맞은 우리 김 간호사는 내내 시무룩이다. 

"우선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해." 그런데 그 다음 설명이 쉽지 않다.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것을 말로 하려니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이다. 그때까지는 '민감성'이라는 단어가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올 가을에 이러 저러한 이유로 '부모교육'이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론은 복잡하고 많았으며 훈육 기술은 막상하려면 어려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기본이 '민감성'이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갑자기 이치가 보였다. 자녀를 바라보는 눈이 민감해지면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쉽게 보일 것이고 자녀의 마음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폭이 넓어질테니 대처하는 방법을 찾기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사람 관계의 기본은 상대방에 대한 민감함이다. 사랑에 빠져있던 어느 깊어가는 가을날 내가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얼마나 민감했던지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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