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박사의 클래식음악산책]<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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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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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키로프)극장의 과거와 현재 <1부>

▲ 이종구(이종구 심장클리닉원장·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나는 지난 7월초에 국립발레단과 예술의전당 후원회원들과 같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백야축제(White Nights Festival)에서 발레(3편), 베르디의 오페라(2편), 쇼스타코비치 갈라(유리 바쉬메트와 모스크바 실내악단)를 관람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 축제는 매년 여름 마린스키극장에서 열리는데 마린스키 발레단은 황제발레단(Imperial Ballet), 마린스키발레단, 키로프발레단의 이름을 모두 사용하고 있어 그 배경이 궁금해졌다. 물론 마린스키극장은 발레뿐만 아니라 키로프오페라와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2006년에 키로프는 301명의 오케스트라 멤버, 120명의 코러스멤버, 130명의 오페라가수, 260명의 무용수, 300명 이상의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있으며 지휘자의 수도 14명이나 된다. 세계에 이보다 더 많은 예술가들을 거느리고 있는 하나의 예술단체는 없다.   

고전발레는 프랑스의 루이14세 왕 때 시작되었는데 그 '태양의 왕'은 춤을 좋아했으며 발레학교를 설립하고 귀족들과 같이 무용공연을 즐겼다. 반면 미개국으로 천대받던 러시아는 피오트르 대제가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면서 서방문명을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1738년에 안나 여제가 겨울궁전의 2층에 최초의 발레학교(황제발레단)를 설립하고 프랑스인 란데가 발레마스터가 되면서 러시아의 발레는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예카테리나 2세는 자기 남편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기는 하였으나 서방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계몽정책을 시행하고 1783년에는 러시아 최초의 석조극장(볼쇼이)을 설립하고 서방국의 오페라와 발레를 공연하고 러시아의 발레를 발전시켰다.

초기의 러시아 발레는 디데로, 페로, 마리우스 페티파같은 프랑스의 무용인들에 의해 지도되었다. 특히 페티파는 20년간(1802-1811, 1816-1837)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면서 46개의 발레를 안무하였는데 특히 차이코프스키와 좋은 팀을 이루어 백조의 호수, 숲속의 잠자는 미녀, 호두까기인형 등 유명한 발레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DVD를 통해 즐겨볼 수 있다.

1860년에는 알렉산드르 2세의 딸인 마린스키의 이름을 따서 마린스키 극장이 건립되었다. 이 극장은 발레보다는 러시아의 민족작곡가(글린카, 무소르그스키, 큐이,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들의 음악을 장려하려는 국민들의 소원을 담아 만들어졌으며 개관기념으로 글린카의 오페라 '황제의 일생'이 공연되었다. 그 후 아린스키는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의 메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요한손과 이태리의 무용수 3명(체체티 등)의 등장은 새로운 활력소가 되며 그 후 아나 파블로바, 니진스키등 많은 러시아 출신의 유명 무용가와 안무가가 등장한다.

특히 포킨(1880-1942)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무용학교에서 공부하고 마린스키극장의 뛰어난 무용수였으며 세계적 안무가가 되었다. 그가 제작한 발레는 지금도 공연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DVD를 통해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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