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공성 강화…어디로 가나?
참여정부는 지난 5년간 의료부문에서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 의약분업 이후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 공공성 강화 방안의 하나로 나온 공공병원 확대는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공공성 30% 달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공공병원 확충 계획은 2002년도에도 급성기 병상이 20% 과잉 공급되는 상황에서 추진될 수 없는 정책이었다. 보건복지부 내에서도 병상과잉 상태에서 다시 공공병원을 짓고 확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급성기 병상은 다시 요양병원 등의 만성기 병상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것 같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건전치 못하다. 대부분 전환된 병원들은 100∼300병상급의 중소병원으로 기존 진료로는 운영이 어려워 요양병원으로 전환한 것이기 때문이다.
3차 병원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1년에 수도권에만 5000병상 이상이 신설되고, 현재도 대형병원의 몸집불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대형병원의 병상확충은 중소병원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두 번째 공공성 확대 방안의 잘못된 정책은 도시형 보건지소의 신설이다. 보건과 의료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부정책의 대표적 실책인 것이다. 현재 도시에 병원이 없어 보건지소를 짓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보건소도 아닌 보건지소로 보건행정이나 보건활동을 하긴 만무하다. 단순히 진료 말고는 할 수 있는 기능이 별로 없다. 국가의 세금으로 동네의원과 경쟁하는 것은 행정과 재정의 낭비다. 선심 쓰듯이 진찰료 할인으로 500원·1000원 받으면서 청구는 청구대로 하고 세금으로 인건비와 비용 등을 충당하는 절대 망하지 않는 의원은 국가가 건강보험료를 빼먹는 행위와 다름없다. 진찰료 할인은 엄연히 환자유인행위로 위법이다.
세 번째로 성급한 보장성 확대 정책이다. OECD 2007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공적의료비 비중은 2000년에 51.6%에서 2007년엔 61.3%(추정)로 늘어날 예정이다. 7년 사이에 거의 10% 가까이 늘어났다. 문제는 보장성 강화라는 명목 하에 급격히 증가한 급여율의 확대 속도이다. OECD 대부분의 나라들은 5%정도의 공적의료비 비중의 확대에 1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급격한 급여율의 확대는 결국 재정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장성 강화로 급여되는 항목은 그 해에만 급여되는 것이 아니라 그 후로 계속 급여해야 한다. 즉 재정부담이 누적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5년도에도 공급자를 압박하여 만든 재정흑자분 1조 9000억원을 모두 보장성 강화에 쏟아 부었다. 그 후에도 성급하고 무책임한 식대 급여화 등을 통해 이번 정부에서만 2조 5000억원 이상을 급여화 확대 정책에 사용했다. 그러나 그 재정은 1∼2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매년 그만큼의 재정이 더 필요한 것이다. 보장성 강화에 급급한 나머지 장기적 재정추계를 하지 않은 점은 곧 건강보험 재정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보장성 강화를 통해 또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국민들이 이 제도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이롭게 제도를 이용하려고 한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라고 하지만 도덕적 해이는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이용하도록 만든 제도적 허점이 잘못인 것이다. 당장 6세 미만 아동의 입원비 면제 정책으로 인해 병원급 의료기관의 소아환자 입원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심지어는 의원급도 병상을 확대하고 소아환자의 입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모들도 입원비가 무료이므로 입원하는데 부담이 없다보니 심지어는 입원을 연장해 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건강보험은 본인부담금이 높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막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본인부담금의 할인 정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금씩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공공성 강화 정책의 하나로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편입을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다. 노동을 통한 임금의 일부분을 모아 재원으로 사용하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료급여환자나 차상위계층의 의료이용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다른 재원을 가지고 지원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그것이 국가 보장의 역할이며, 의무이다. 그런데 마치 건강보험의 재정이 국가재정인 것으로 착각하고 모든 계층의 보장을 건강보험이라는 한 주머니로 담고 있다.
당장 내년에도 차상위계층의 건강보험 편입으로 2000억원 이상의 국가부담을 줄이려고 한다. 결국 이 돈은 건강보험에서 부담해야 할 돈이 된다. 갈수록 국가가 지원하는 국고지원이나 보호해야 할 계층의 재정지원을 미루는 모습은 공공성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
공공성 강화라는 목표에 따른 섣부른 급여확대는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급여화의 급격한 확대에 따른 후유증이 걱정이다. 참여정부의 급여확대 정책은 차기정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매년 보험료를 7% 정도 올려야 급여확대로 인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더 이상의 급여확대는 거의 불가능하며, 현재의 수치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노인장기요양보험료도 건강보험료에 5% 정도 추가된다고 하면, 당장 내년의 실질보험료율 인상은 12% 이상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인상률은 한 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년 7% 이상의 인상요인이 있다. 성급히 추진한 식대급여등 보장성 강화정책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성급한 보장성 강화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두고 볼 일이다. 과연 그 책임은 누가 지는지도 지켜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