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뭐 하셨습니까. 그땐 확신을 가진 인물이 있었나요. 그 후보에게 투표하면 세상을 조금 바꿀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까. 계속된 개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건지 혹은 어줍잖은 개혁보다 보수로 회귀하면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더 나을 거 같은지 고민하셨습니까.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누구든 어떻냐고 어차피 의료와 정치는 별개라 생각하면서 투표조차 않고 임시공휴일을 즐기셨습니까. 당직 후 주말 오프면 시외에 있는 집에 빨래 싸들고 간다. 가서 차려주는 밥 우걱거리며 먹고 이리저리 TV를 돌려보다 금새 쓰러져 잠이 든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 전공의 생활하면서 배만 나온다. 허기에 깨어 보니 벌써 저녁이다. 다시 밥을 먹고 리모콘을 괴롭힌다. 뭐 딱히 보고 싶은 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쁜 여배우 나오면 헤벌쭉해져 보다가 지겨워지면 개그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빠져 키득된다. 그러나 얼마전 우연히 KBS 일요스페셜 '4인의 정객(政客), 시대를 토(吐)하다'을 보게됐다. 각 후보 진영에서 난다하는 분들이 서로 비방하지 않기로 하고 주제 제한없이 막창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조금 낯선 장면이었다.
통합신당 유시민 의원은 개혁과제를 숙제하듯 풀어나가려 했는데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면서 정책을 입안 실행하는데 어려웠다고 토로하며 개혁을 완성하게 한 번 더 믿어달라고 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경제를 시험대위에 올려놔버린 개혁세력의 실정을 지적하며 국민이 안정보수를 선택하려는 큰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민노당 노회찬 의원은 서민을 위하는 척만 하는 짝퉁 개혁세력을 버리고 소외된 계층의 의견을 대변하는 진보를 믿어달라고 했다. 창조한국당 정범구 대변인은 정치 때가 묻지 않은 참신한 미래의 새로운 설계자를 자처했다. 모두들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잘알고 있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 좋아보였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 그리고 대선에 적극 관심을 갖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처럼 병원생활 핑계 대며 무관심하게 남아있다 당일 급하게 휩쓸려 결정해버리면 몇 년을 또 방관자가 될 것 같아 더욱 조바심이 났다.
심심찮게 병의원 도산 기사가 뉴스에 등장한다. 의대 시험 폭탄 속을 견디며 선택한 소위 대박 과들도 많이 시들해졌다고 한다. 명절에 가보면 친척어른이 학생 때 공부는 좀 하는 것 같더니 돈 버는 건 왜 이리 시원찮냐고 한마디 한다. 얼마 전 의협 99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대선 후보는 의사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직접 다른 직종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더 상했다. 후보를 선택한다고 모든 게 해결된다는 꿈은 꾸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몸이 피곤하고 병원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말고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나중에 새 정권이 들어서서 일할 때 비판 또는 칭찬을 할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