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갈비의 추억

LA 갈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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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5.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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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중앙일보 기자)

오랜 만에 상추에 싸서 먹는 LA 갈비의 맛은 기가 막혔다. 2006년 9월 어느 날, 미국 캘리포니아의 강렬한 햇빛이 채 사라지지 않은 오후 무렵이었다. 야외라서 더 잘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어린 아이 둘을 포함해 우리 가족과 재미교포 A씨네 등 총 7명이 먹은 LA 갈비는, 뼈까지 포함한 무게라곤 하지만 10파운드(7근 반)가 넘었다. A씨 부인이 "LA의 많은 한인 마켓 중에 갈비 양념 맛이 제일 좋은 곳에서 사왔다"며 내놓았을 때만 해도 '어떻게 저 많은 걸 먹나' 걱정했는데….

미국 연수를 가게 된 남편 때문에 1년간 휴직을 하고 지낼 때였다. '전업주부'가 된 나는 모처럼 가족을 위해 매일 요리 솜씨를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음식 재료는 차로 1시간만 달리면 LA나 샌디에이고의 한인 마켓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한인 마켓의 인기 품목 중 하나는 양념된 육류였다. LA 갈비는 물론, 주물럭, 돼지 불고기, 뼈 없는 닭갈비 등 메뉴도 다양했다. 교포들 뿐 아니라 남미 계통 사람들이나 토착 미국인들도 가끔씩 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날 A씨 댁에서 먹어보기 전까지는 그 코너를 그냥 지나치곤 했다. 한국의 대형 마트에서도 왠지 양념이 돼 있는 고기는 싱싱한 재료를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사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A씨네 방문 이후로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LA 갈비는 필수 구입 품목이 됐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 가족은 쇠고기를 참 많이 먹었다. 로스구이나 스테이크용으로는 주로 Costco에서 미국 농무부(USDA)의 품질 인증 4단계 중 2급에 해당하는 'Choice'급을 사다 먹었다. 최상급인 'Prime'급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맛이 있었고, 3급에 해당하는 'Select'급보다는 비쌌지만 비슷한 질의 한우 값에 비하면 저렴했다. 하지만 한인 마켓에서 사오는 양념 LA 갈비는 어떤 고기를 사용한 것인지 사실 알 수 없었다.  

우리 정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미국은 사료 값 부담 때문에 소를 20개월 미만 때에 도축하는 경우가 90% 정도인데, 한국에 파는 쇠고기는 한국인들이 'LA갈비'를 선호해 갈빗살을 키우려 24개월 정도까지 키운 뒤 도축한다고 한다. 미국의 한인 교포들이 먹는 LA 갈비는 그쯤 되는 고기가 아닐까. 양념해서 파는 건 그보다도 질이 낮은 것일지 모르고….

최근 미국 한인회 등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 논란에 '자제'를 촉구하고 나선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또 기자로서 의료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근거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정부의 협상 과정이나 결과에 아주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 문제는 원래부터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었다는 얘기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은, 문제 제기는 됐을지언정 이렇게 전면에 부상될 정도의 사안은 아니었다. 정권 교체 후 돌변하다시피 한 정부의 태도, 철저하지 못했던 협상과정, 여기에 '광우병 괴담'을 교묘히 이용한 일부 정치 세력의 선동이 국민들을 헛갈리게 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미국산을 먹고 싶지 않아도 일부 유통 상인이나 음식점들이 원산지를 속여 팔 경우 어쩔 수 없이 먹게 될 거라는, 소비자들의 뿌리 깊은 불신도 한 몫 했다.

일본처럼 철저한 검사와 자료 수집 데이터를 가지고 협상에 임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다만 국민의 반응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광우병 괴담 정도는 인터넷에서 잠깐 돌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중·고생들이 '급식에 광우병 쇠고기가 나올 것'이라며 촛불시위에 몰려나오진 않았을 게다.

'국민 건강'을 앞세운 논쟁 때문에 방역 당국자들이 광우병 관련 끝장 토론이니 국회 청문회에 불려 다니던 바로 그 즈음, 조류인플루엔자(AI)는 서울의 방역망도 뚫었다. 국민 건강이나 경제에 대한 위협 측면에서 나는 코앞에서 확산되고 있는 AI가 훨씬 더 걱정스럽다.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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