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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이자 질병에 대한 극복과 좌절의 역사이다. 인간의 개인적·집단적 고통 가운데 질병만큼 시공을 초월해 인류를 괴롭혀 온 것이 없으며, 또 인간의 노력 가운데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울인 것만큼의 지속적인 활동도 찾기 어렵다.
질병은 생명체의 탄생과 함께 나타난 것으로 인류보다 몇백 배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질병의 역사는 생물의 역사이자 지구의 역사이다. 질병의 바탕에는 이렇게 자연사적인 측면도 있지만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난 뒤 더 중요하게 작용해온 것은 질병의 사회사적인 특성이다. 즉 생물학적 개체라기보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성격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질병은 사회와 문명이 만들고 질병은 다시 인간의 역사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사에서 질병이 가지는 의미를 온전하게 파악하는 데 역사적·문명적 관점이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견해 역시 그렇다.
세계적인 의사학자로 존스홉킨스대학 의사학연구소장을 지냈던 헨리 지거리스트의 <문명과 질병>이 황상익 서울의대 교수(의사학)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20세기 중반까지 삶을 이어갔던 헨리 지거리스트는 이 책을 통해 당시까지 학자 사이에서만 오고가던 질병의 사회사적인 특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논리적인 접근과 창의적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전파했다는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이 책을 옮긴 황상익 교수는 "헨리 지거리스트는 질병사 분야에서 과거 학자의 연구업적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한편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근대적 의학사가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학계를 주도할 미국에 정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총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질병발생 요인으로서의 문명 ▲질병과 경제 ▲질병과 사회생활 ▲질병과 법률 ▲질병과 역사 ▲질병과 종교 ▲질병과 철학 ▲질병과 과학 ▲질병과 문학 ▲질병과 미술 ▲질병과 음악 ▲질병에 맞서온 문명 등 인류 문명 전 영역에 질병이 미친 영향을 섭렵하고 있다.
황상익 교수는 서울의대 의사학교실 주임교수와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재미있는 의학의 역사> <역사와 사회속의 의학> <문명과 질병으로 보는 인간의 역사> 등과 옮긴책으로 <세계 의학의 역사> 등이 있다(☎031-955-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