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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병속의 바나나를 놓지 못하는 원숭이는 아닐까?

나도 병속의 바나나를 놓지 못하는 원숭이는 아닐까?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6.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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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태(전남 여수 성바오로외과의원장)

어제는 박 모 선생님이 의료계를 떠난다는 글을 읽고, 20여년전 60대 연세에 병원을 정리하시던 산부인과 원로 선배님 생각이 떠올랐다.

라이온스 클럽 지역 총재까지 지내셨던 선배님은 보성고 31회 졸업이시니 나에게는 23년 선배이신데, 요즘은 허리가 좀 안좋으시지만 사모님과 노년을 잘지내고 계신다.

이 두분은 어떻게 용단을 내리셨을까? 아직 병원을 지키고 있는 나는 정말 병속의 바나나를 놓지 못하고 있는 원숭이는 아닐까?

1977년 7월 10일 의료보험이 시작되던 시기에 고향에서 외과를 개원한 후 30년을 같은자리를 지키며 외과의사로서의 자부심을 지키려고 무던히도 바둥거리며 살아왔다.

5형제의 장남으로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노모를 모시고 두딸을 키워 시집보내면서 대과없이 살아온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의사로서는 모교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도 해보았고, 지역의사회에서는 솔선수범하려고 애썼으며, 15년 넘도록 수련과의 의국 동문회장을 떠밀리듯 해왔으나 가톨릭 신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해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의약분업이 시작되던 때는 의협중앙이사로 현장에서 변화되어가는 의료계를 몸으로 느끼며 투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개원가가 해를 더할수록 힘들어짐을 피부로 느낀다.
며칠 전에는 동료의사들끼리 우리도 젊은의사들처럼 신흥주택상가로 병원을 옮긴다면 후배의사들에게 욕 먹을 일이 될 거라고 말하면서 같이 웃기도했다.

개원의가 전부 30여명이 못 되던 때 어느 원로 한분이 자신의 병원 가까이에 같은 과 병원이 개원하는것을 극히 꺼리고 신경쓰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봉직의사까지 250여명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변했고, 골목골목 들어설 곳 없이 의원이 가득차있는데 어디로 옮겨 무엇에 희망을 걸겠는가. 자괴감마저 든다.

한참 개원가가 잘 되던 시절 주위 몇사람과 병원을 세워볼까 준비하다가 접고, 한때는 택시회사에 투자하여 3년반을 보내기도 했다. 농장을 만들어 젖소와 돼지를 수백마리 키우다 실패하였고, 지방신문사가 범람하던 시절에 동료의사와 지방 일간신문을 발행하다가 7개월만에 부도를내고 5년이상 재판에 시달리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지금은 환자가 날로 줄어들고 있지만 (비보험 시설투자가 힘에 겨워) 30년을 주로 보험진료에 매달리며 살아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전신마취수술을 한달에 5~10명은 시행했는데, 회갑을 넘긴 올해부터는 겁도나고 중환자를 기피하다보니 5월에야 겨우 충수염환자 한명 밖에 수술하지 못한 채 외래 환자를 보고있다.

다행히 의료 이외의 곳에 투자를 하여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직 눈에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아내의 성화가 그치지를 않고, 이대로 몇년을 더 자리지켜야하는 내모습이 정말 원숭이 신세가 아닌가 반성해본다.

근검절약을 신조로 소식과 규칙적인 운동을 30년 가까이 실천해왔는데, 앞으로도 건강을 지키면서 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가까운 친구와 아내곁에서 생을 잘 정리하고싶은데 잘되려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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