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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건너는 아이들

태평양을 건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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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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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중앙일보 기자)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과 거의 1년 만에 인터넷 메신저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역시 '엄마들의 수다'는 애들 교육 얘기로 시작됐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던 그 친구의 큰 딸은 벌써 중3이라고 했다. 신경 쓸 일이 많겠다고 했더니 뜻밖에 "지금 그 애 캐나다에 있어"하는 답이 돌아온다. 그 친구가 대화명을 '울 딸 홧팅~'으로 해놓은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정말 의외였다. 그 친구는 여대를 다닐 때 총학생회 부회장을 하고 공장에 위장취업도 했었던, 소위 '운동권' 출신이다. 역시 운동권 출신이었던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농담반 진담반 '사모님'이라 불리고 있긴 하지만, 그 친구가 아이의 조기유학 얘기를 하는 게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워낙 허물없는 사이라, "운동권도 별 수 없구나, 자식 문제는"하고 은근히 놀렸더니 "오죽하면 그랬겠니. 중3이 되니 애가 더 불쌍해서…. 9월에 보냈어" 한다. 메신저 너머 그 친구의 한숨짓는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우리나라에서 자녀 교육에 관한 소신만큼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기 어려운 게 있을까. 조기교육, 조기유학 등에 대해 호기롭게 비판하던 이들도 막상 자신의 자녀가 그런 문제에 부딪힐 나이가 되면 어떤 학원이 좋은지, 유학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등에 슬그머니 귀를 기울인다. 해가 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던지, 아예 무시하던지, 아니면 사활을 건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중에선 좀 체면을 구기더라도 적당히 적응하는 게 자녀를 위해서나 스스로를 위해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교수나 사회운동가 중에도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거나, 외고·민족사관고 등에 보낸 경우를 여럿 봤다.

그걸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불가항력적'일 만큼 엉망인 우리나라의 공교육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탓할 처지도 못된다. 필자도 고백할 게 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 인터넷 카페에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생각을 쓴 적이 있었다. 영어 동화나 비디오 등을 즐겁게 함께 보는 정도라면 몰라도 모국어조차 서툰 어린애를 시험대에 올리는 영어유치원(엄밀히 말하면 '유치원'이 아니라 '어학원'이다)에는 보내지 않겠노라고. 그런데 지금 둘째 아이는 영어유치원에 다닌다. 물론 변명꺼리는 있다. 미국에서 1년간 어린이집(preschool)을 다니더니 우리 가족 중에 가장 영어가 몸에 '체화'된 아이를 위해, 이왕 익힌 영어실력을 유지시켜주는 게 여러 모로 이득인 것 같아 그랬노라고 말이다. 어쨌든 스스로 '신조'를 보기 좋게 꺾은 셈이다.

교육계를 들썩인 논란 속에 내년 3월 국제중학교 두 곳이 서울에도 문을 열기로 확정됐다. '귀족학교'가 될 것이라느니, 사교육비가 더 들 것이라느니, 초등학교부터 입시전쟁터로 만들 것이라느니, 하는 반대 논리에 공감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을 넓혀주는 다양한 종류의 학교는, 설사 '귀족학교'일지라도 일단 더 생겨야 한다고 본다. 대신 원래의 취지나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철저히 관리(자율성을 침해하라는 것이 아니라)해주면 된다. 그리고 정부와 교사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공교육 내실화에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돈만 있다면 자녀를 해외로 보내고 싶다는 부모들 중엔 빗나간 교육열에 들뜬 이들도 적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에 타협하는 엄마 아빠들이 절대 다수다. 말뿐인 공교육 내실화 구호는 이제 정말 지겹다. newslady@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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