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허대석 초대 보건의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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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A의 설립 배경은 무엇인가?
지난해 많은 정부 기관이 통폐합되는 가운데 어렵게 새로운 조직이 하나 만들어졌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NECA의 역할은 컴퓨터로 따지면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운영시스템, 즉 '의료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그동안의 전통적인 관리 중심 의료(정책)의 한계가 비급여 등 의료 현장과 제도와의 괴리를 낳았기 때문에 이제는 근거 중심 의료가 필요한 시점이다. 보장성 강화 역시 비용 보장성 측면이 강조됐다면, 이제는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보장성 강화로 논의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
이미 영국·프랑스 등의 선진국에는 유사한 조직들이 짜여져 있다.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의료행위의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어떤 의료 행위를 두고 근거가 있다, 없다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업의 신용등급처럼 근거가 아주 높은 의료행위와 근거가 낮은 수준의 의료행위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의료행위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효과에 대한 근거가 있는 신약들을 허가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허가받은 신약들 중 어떤 약이 제일 좋은 지는 알 수 없다. 제약회사는 신약들을 비교·평가하는 연구는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공익적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의료행위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나.
심평원은 이미 일어난 의료 행위를 심사하고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NECA와 차이가 있다. 심평원이 사법부의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지금까지 심평원이 급여 기준까지 만들었다는 데 있다. 보험금을 직접 다루는 기관이 평가 기준까지 만든다고 하니까 이해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것 아닌가.
기준이나 행위에 대한 평가는 독립적인 기관에서 하고, 이를 어떻게 보험에 적용할 것인지는 정부(보험자)가 결정하는 상호 보완적인 시스템이 마련될 때 비로소 균형있는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단일보험시스템에서는 결국 급여 여부가 가장 핵심 아닌가?
좋은 취지로 공보험이 출발했고 그동안 많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공보험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마치 부당한 행위로 보는 시각이 있다보니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
하지만 이제 공보험이 모든 의료행위를 커버하는 시대는 지났고,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
NECA의 평가 결과 근거가 충분한 의료행위는 공보험에서 지원하고,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연구 목적으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 중간단계에 있는 의료행위는 새로운 제도가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근거가 많지 않은 의료행위를 삭감(급여 퇴출)하는데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등을 포함하면 의료 시장 규모는 50조원이 넘는다. 그동안 보장성이 더 강화된 것도 아니고, 의료산업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채로 흘러왔다. 사회 환경은 바뀌었는데, 과거의 운영시스템을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이제는 기존의 땜빵식 관리 의료 시스템으로는 안 된다.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내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 독립성 측면에서는 재정적 자립이 되면 좋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올해 예산이 40여억원인데, 앞으로 더 늘어나야 할 것이다. 보험재정을 건전화하는 효과가 큰 만큼 선진국처럼 보험 재정의 일정 부분을 사용하는 방안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중립성은 소비자·공급자·정부·산업 등 이해당사자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아야 얻을 수 있다. 과거에는 국가가 의료 부문에서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의사들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NECA의 출발에는 그런 배경을 갖고 있지 않다.
연구원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이는 하나의 장이다. 통계전문가들과 최소한의 연구 관리 인력만 기관에 상주하고, 직접 평가에 참여할 전문가들은 초빙연구원 형태로 1주일에 2~3시간 근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다만 연구 과제를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방식은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할 위험이 있어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당장 어떤 분야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나.
우선 진료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의료행위 중에서 국제적인 근거나 기준과 거리가 큰 부분부터 다루게 될 것이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의료행위 중 동일한 수준의 행위가 여러 개 있는 경우 비용효율평가 등을 통해 각각의 근거를 재평가하는 것이다. 근거가 있는데도 급여를 인정하지 않거나 근거에 비해 급여를 너무 후하게 인정해주는 불합리한 부분도 대상이 된다.
약에 대한 평가는 식약청의 허가 심사나 약제재평가 등이 이미 이뤄지고 있고, 서로 오해할 만한 부분도 있어서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앞으로 복지부 차원에서 업무 조정이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