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는 의사들 자존심 때문에 어려움 숨겨
요양기관 폐업 2006년 1951곳서 작년 2381 급증
올해 신규 전문의, 개원 희망 대부분 접어
#1. 대한민국 의료 1번지 강남도 '끙끙'
글로벌 경제위기 한파로 서울 강남 개원가도 몸살을 앓고 있다. 2008년 서초구 지역 289곳 의료기관 중 22곳이 의사회에 폐업 또는 이전 신고를 했다. 송파구는 335곳 중 15곳이 폐업 신고를 했다.
1200여곳의 의료기관이 몰려 있는 강남구의 경우 지난해 12월 한달에만 22곳(치과·한의원 포함)이 보건소에 폐업 신고를 냈다.
강남구보건소 관계자는 "경영난 때문에 병원 문을 닫더라도 의사들은 자존심 때문에 '유학 간다'고 하지 어려워서 폐업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2. 새내기 전문의들 "개원 엄두도 못내요"
부산의료원에서 가정의학과 수련을 마치고 올해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박준호 전문의는 경남 창녕군의 한 요양병원에 봉직의로 근무하기로 했다.
그는 "전문의 시험에 합격해도 불경기라 취직하기가 정말 어렵다"며 "2년 전만 해도 선배들 중 반은 개원하고 반은 봉직의로 갔는데, 올해 주변 동기들 중 개원하는 의사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과목별로 차이는 있지만 요즘엔 페이 닥터 자리도 구하기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 개원가는 문 열고 '집단휴업'하는 형국이다. 해마다 거듭되는 낮은 수가 인상과 환자 감소에 미국발 경제위기 쇼크가 겹치면서 문을 닫는 의료기관들이 크게 늘었다.
■ 요양기관 종별 폐업 현황 단위:개소
본지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요청해 입수한 요양기관 폐업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한해 폐업신고를 한 의료기관은 총 2381곳. 2006년 1951곳과 2007년 2259곳에 이어 확연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의원급은 2006년 1795곳→2007년 2015곳→2008년 2061곳으로 급증했고, 병원급도 같은 기간 106곳→132곳→157곳으로 늘었다.
의사들은 경영난에 속앓이를 하더라도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의사회에도 알리지 않는다. 서울 송파구의사회 관계자는 "폐업하는 의료기관 10곳 중 의사회에 얘기를 해주는 경우는 1~2곳에 지나지 않는다"며 "대부분 나중에 주변 원장들에게 듣거나 보건소 공문을 통해 알게 된다"고 말했다.
산부인과의 경우 개원하는 의료기관보다 문을 닫는 곳이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에 따르면 2008년 10월 현재 전국의 산부인과 병·의원은 1679곳으로 1년 전보다 87곳이 줄었다. 2003년까지만 해도 개원 257곳, 폐원 180곳으로 개원하는 수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격차가 점점 줄어들더니 2006년 개원 186곳, 폐원 171곳에서 2007년에는 개원 160곳, 폐원 172곳으로 역전됐다. 2008년(10월까지)에도 개원 131곳, 폐원 147곳으로 문을 닫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산개협은 "더 큰 문제는 산부인과 폐업 추세가 도시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과 2008년을 비교해보면 전체 산부인과 병·의원은 1766곳에서 1679곳으로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16개 시·도 가운데 충북 지역만 53곳으로 같을 뿐 다른 지역은 모두 숫자가 감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따르면 한해 평균 4~5명의 의사가 빚더미와 생활고를 못이겨 자살한 끝에 부검대에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가 발견되거나 약물 사용 등 사망 원인이 명확한 경우 부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경영난으로 자살하는 의사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액채무자 회생 신청 대다수가 의사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개인파산·회생 전문 김관기 변호사(김박법률사무소)는 "환자가 당장 안 가도 되는 성형외과와 한의원이 가장 어렵다"며 "최근 문의도 늘었고 실제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지방이 더 어려운 것 같다"며 "강원도 동해처럼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의 특히 그렇다"고 덧붙였다.
지난 한 해 파산 신청을 한 의사의 정확한 숫자는 통계자료가 나오지 않고 있으나, 고액 채무자(부채 5억원, 담보채무 10억원 이상)의 상당수가 의료인이다.
본지는 대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 국내 전체 의사 수에 관한 통계자료를 요청했으나, 대법원은 "직업군별 통계를 따로 뽑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변해왔다.
각급법원별로 보면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2008년 1월부터 10월까지 고액 채무자로 파산 신청한 사건 57건 중 32건이 의사나 한의사가 한 경우였다. 대전지법에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 25일까지 6명의 의사·한의사가, 부산지법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 중순까지 13명의 의사·한의사가 고액 채무자 일반회생 신청을 했다.
부산지역 병원컨설팅그룹 엠케이파트너스는 "최근 경영컨설팅을 의뢰하는 의료기관 10곳 중 7~8곳은 환자수와 매출액이 1~2년 전보다 50~75% 감소한 경우"라며 {폐업을 고려하는 병원이 20%가 넘는다"고 밝혔다.
의사 신용불량자 ↑ 대출한도 ↓
경기 한파가 의료계를 강타하자 의사를 대상으로 최고 5억원을 빌려주던 신용대출 상품 닥터론의 한도도 축소되고 있다.
시중 한 은행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의사 신용대출 연체율이 0.8%로 우량 신용등급인 일반 직장인의 연체율 0.6%를 훌쩍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자 의사면허증의 담보가치도 줄었다. 시티은행은 닥터론 한도를 5억원에서 3억 5000만원으로 낮췄고, 신한은행도 3억원에서 2억 5000만원으로 줄였다. 하나은행도 개원예정의에 대한 신용대출 한도를 3억원에서 2억원으로 축소했다.
국민은행 닥터론의 경우 개원의에 대해 기존 최고 3억원의 한도를 유지하는 대신 금리를 올렸다. 국민은행 청담동지점 관계자는 "다른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게 있으면 그 액수만큼 감액할 뿐 대출한도 자체는 아직 변함이 없다"며 "다만 금리가 대폭 낮아지면서 수익성에 문제가 생겨 가산금리가 0.43%포인트 올랐다"고 말했다. 봉직의의 경우 대출한도는 2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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