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원로·종교인 등 참여…
고 김수환 추기경도 위원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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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원로들의 명단을 받아든 황준식 명예총재는 "덕망있고, 쟁쟁한 의료계 원로들이 많은데 추대장을 받을 자격은 있는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90명 위원 중에 의사가 추대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라도 참여해서 국민의 건강과 의료 문제에 관한 의견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에 결심을 굳히게 됐습니다."
황 명예총재가 원로회의까지 진출하게 된 배경에는 '한국건강가족실천운동본부'와의 인연이 자리하고 있다.
1995년 운동본부 창립의 산파역을 맡은 황 명예총재는 총재를 맡아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문화의 확산을 위해 앞장서면서 학계는 물론 정관계와 종교계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이러한 활동은 훗날 건강가족기본법 제정과 제1회 가정의 날 행사 개최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예기치 못한 수술 후유증으로 외과의사의 길을 접고,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외과학계의 거두인 민병철·장선택 교수 등과 함께 서울의대를 졸업한 황 명예총재는 1954년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국 에딘버러대학 왕립의과대학병원·서독 굇찐겐대학 의과대학·미국 샌프란시스코 성요셉병원 등에서 선진 의학과 진료를 체득한 황 명예총재는 1961년 7년 동안의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모교인 서울의대로 복귀했다.
1970년 경희의대로 자리를 옮겨 외과 주임교수를 맡아 후학 양성과 진료·연구에 매진하던 황 명예총재는 1988년 서울 성동구에 우리병원을 개원, 손 끝이 야무진 외과의사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갑자기 닥쳐 온 수술 후유증은 깊고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담낭에 문제가 생겨 복강경으로 절제수술을 받았는데 그만 돌 하나가 떨어진 걸 몰랐지요. 15일 만에 다시 병원에 가서 재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 후유증이 깊어지면서 복부와 다리에 힘이 풀렸다. 평생 천직으로 알았던 메스도 놓아야 했다. 외과의사로서의 삶이 무너지고 난 후 남은 것은 극도의 좌절과 분노였다. 실의와 방황에서 바로설 수 있도록 손을 잡아준 것은 가족들과 마음을 다스리는 책들이었다.
"정신의학과 스트레스 분야의 책을 주로 읽었는데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원인 가운데 상당수가 가족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스트레스도 덜 받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보다 많은 국민이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황 명예총재는 한국건강가족실천운동본부 창립을 주도하며 사회와의 소통을 넓혀 나갔다. 시민단체 뿐 아니라 학문적인 뒷받침을 할 수 있는 한국정신과학학회·대한스트레스학회·용서연구회 등을 창립하는데 힘을 보탰다.
황 명예총재는 저술 활동을 통해 대국민 홍보에도 팔을 걷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을지서적, 1993), <한국인의 스트레스>(밀알, 1995), <스트레스 과학의 이해>(공저, 신광출판사, 1997), <오해와 건강>(하나의학사, 2002), <가정이 화목해야 100세까지 건강하다>(범우사, 2006) 등 스트레스와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출판물을 잇따라 쏟아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500여 편의 논문과 단행본을 모아뒀다는 황 명예총재는 저녁마다 5km를 걷는 것으로 건강을 관리하며 새로운 출판물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건강관리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황 명예총재는 "화학약품을 섞어놓은 패스트푸드를 멀리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물론 가족간에 갈등과 주변 사람들과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은 기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