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검이 말해주는 죽음 屍活師

주검이 말해주는 죽음 屍活師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0.01.0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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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 지음/오픈하우스 펴냄/1만 5000원

"메멘토모리, 메멘토모리, 메멘토모리…"

"그대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로마시대 터툴리안이 쓴 <Apologeticus> 33장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와 행진하는 장군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 시내를 지나는 동안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간혹 승전에 들떠 황권전복을 모의하는 이들도 있었기에 "너무 우쭐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승장이 군대를 이끌고 시내로 입성하면 그 자리에서 처형될 수도 있었다.

역설적이지만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곧 현재의 삶을 지배한다. 죽음을 기억하며 지내다보면 살아 있는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닿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이지만 금전·재물·지위·명예 등을 삶과 행복의 지표로 살다가 죽음을 앞둔 얼마되지않는 짧은시간동안 그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세상을 등지게 된다.

외면하고 싶지만 맞을 수밖에 없는 죽음.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국내 법의학계에서 일가를 이뤄온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주검이 말해주는 죽음 屍活師>를 펴냈다. 시활사는 '죽음에 대해서는 주검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산 스승'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평생 접해온 수많은 죽음과 주검을 통해 삶에서 죽음이 주는 의미를 되짚어간다. 죽음에 대한 문화적인 현상과 과학적인 입장을 에둘러 살펴보고 예술작품에 담긴 죽음도 톺아본다.

저자는 나뭇잎에서 주검의 의미를 찾으며 책장을 연다. 여름날 그 거친 비바람에도 꿋꿋이 가지에 매달려 무서운 집착력으로 삶을 이어가던 나뭇잎은 가을이되어 자기의 사명을 다했다고 여겨지면 스스로 몸을 던져 낙엽이 된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낙엽은 이듬해 봄에 돋아날 새싹을 위해 자기의 몸을 완전히 녹여 거름이 되어 없어진다. 낙엽은 우리에게 때를 알리고 사명의 한계를 알리며 남을 위해 몸을 바칠 때가 되면 기꺼이 희생하는 지혜와 섭리를 가르쳐 주는 자연의 스승인 것이다. 이러한 희생은 우리 몸속에서도 세포자살을 통해 매일 일어난다. 그런데 자의식이 없는 이 세포의 선택이 '희생' 때문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세포의 주인인 인간만이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모른 채 거스르고 있다.

모두 다섯장으로 나뉘어진 이 책은 먼저 '죽음의 본질과 옛사람들의 생각'에서는 모든 생물은 수명에 큰 차이가 있지만 저마다 알찬 삶을 꾸리기에 애쓰지만 유독 타인과 비교해서 수명의 길고 짧음을 문제삼는 것은 인간뿐임과, 결국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욕망이 있고 사는 동안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피라미드·스핑크스 등에 나타난 영혼불멸사상과 사후세계에 대한 염원을 알아보고, 권력과 영광이 죽어서도 계속되기를 바랬던 고대시대의 순장 등 장례풍습도 소개한다. 중세시대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나타난 죽음에 대한 수용과 반발을 살펴보며 문학작품이나 조각·벽화 등 각종 예술작품에 깃든 죽음을 파헤친다.

'그림과 문신에 나타난 삶과 죽음의 위상'은 파울 클레(1879~1940)의 '죽음과 화염',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1)의 '잠과 그의 형제 죽음', 퍼디난드 호들러(1805~1918)의 '밤', 카를로스 슈바베(1866~1926)의 '산역꾼의 죽음' 등에 나타난 죽음을 이야기하고, 특히 폴 고갱(1848~1903)이 유언삼아 남기려했던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동경했던 세상과 선택한 삶에 대한 고뇌 등 수없이 교차되는 인생의 편린속에서 결국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긴다. 또 고대부터 인류가 몸에 새겨온 문신 속에 담긴 죽음에 의미도 알아본다.

'의학에서 다루어지는 죽음'에는 미국 죽음학의 대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인-분노-거래-억울함-수용에 이르는 죽음의 단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의학에서 말하는 죽음의 개념을 소개하며 뇌사·존엄사·안락사 등에서부터 지난해 법제화된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견해를 밝힌다.

'무언의 메시지-죽음에 나타나는 신기한 현상'은 법의학적인 사후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고, '죽음의 이미지 체험'이야기를 모은 임사현상에 대한 설명도 눈에띈다.

마지막으로 '죽음이후의 죽음'에서는 시체를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며 부패하지 않도록 방부처리하는 최신기술인 엠발밍(embalming)을 소개하고 죽은 후에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사후의 생' 문제에 접근한다.

이 책 단락사이에 자리한 '법의학자의 청진기' 코너는 '스스로 죽음 앞으로 걸러간 소크라테스' '생과 사가 나뉘는 1분' '시체체온이 올라간 소동' '죽어서도 아이는 낳는다?' '혁명가 마라와 그림으로 미화된 죽음' 등 죽음과 관련된 역사속 사건과 에피소드, 법의학적 소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웰다잉'을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끝마무리가 살아온 인생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토론하고 죽음을 준비하며 배우는 성숙한 마음이 절실하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임에 틀림없다(02-333-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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